과거에 우리 사회가 바라고 상상하던 주택의 상징은 '푸르른 언덕 위의 그림같이 아름다운 2층 박공지붕을 가진 기와집'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단독주택보다 아파트라는 공동주택을 더 선호하게 되었다. 아파트로 인해 땅을 밟고 땅 위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공중에 떠서 살게 되었다. 성냥갑 같다고 깎아내리면서도 아파트가 제공하는 생활의 편리성과 안전, 다양한 커뮤니티 시설, 익명성과 사생활의 보호 등에 매료됐다.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가치 때문에 아파트가 대표적인 주거공간이 된 셈이다. 이와는 다른 관점에서 세계의 공동주택을 살펴보자.
덴마크 코펜하겐의 신도시 외레스타드는 환경친화적인 미래형 도시다. 현대 건축의 전시장과도 같은 이곳에 덴마크 건축가그룹 BIG가 설계한 공동주택 '8 하우스'가 있다. 하늘에서 보면 건축물의 배치 형태가 숫자 8과 비슷해 붙인 이름이다. 건축물 형태도 독특하지만 겨울에 일조시간이 짧은 북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채광 문제를 건축 설계로 해결한 것이 특징이다. 모든 세대에서 환기와 채광을 가능한 한 많이 할 수 있도록 남서쪽 모서리를 낮춰 남쪽의 공간을 확보했다. 겨울 북풍을 막기 위해 북동쪽 모서리는 높게 디자인했다. 또 도시와 교외의 경계선쯤에 위치하는 장점을 살리는 의미에서 세대마다 조망을 확보했다. 그 결과 건축물 한쪽에서는 입체적인 공동주택의 입면이 도시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고, 다른 쪽에서는 자연 속에서 끝없이 펼쳐지는 지평선과 아름다운 전망이 펼쳐진다. 자전거의 나라답게 저층에서 고층까지 자전거 길과 산책로가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어서 모든 거주자는 자전거를 타거나 자전거를 직접 끌고 자기 집에 갈 수 있다. 도시인의 기능과 낭만을 모두 넣은 공동주택이라 할 수 있다.
알록달록한 발코니와 캔틸레버(Cantilever·한쪽 끝이 고정되고 다른 끝은 받쳐지지 않은 상태인 보)의 거대한 매스가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모양을 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워조코 공동주택은 네덜란드 건축가그룹 MVRDV가 설계했다. 전원주택지인 암스테르담 오스도르프 지역은 인구가 급격히 유입되면서 녹지와 주택지 부족이 지역 사회의 문제로 떠올랐다. 이 프로젝트는 이 지역에 거주하고자 하는 노인 계층을 위해 많은 세대를 수용하면서도 전원주택의 장점을 누릴 수 있게 하자는 취지에서 제안됐다. 건축물 한쪽에는 크기가 다양한 반투명 색의 발코니가 있는데, 공간 활용도를 높이면서도 내부에 비치는 자연광을 다양하게 확보하는 효과가 있다. 반대쪽은 수평으로 길게 돌출된 캔틸레버 공간이다. 건축물의 형태는 법규에 따른 건폐율과 용적률을 따르면서도 건축물을 대지에서 띄워 최대한 내부공간을 확보했다. 이로써 공중에 떠 있는 건축물 아랫부분의 외부 공간은 공용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주거공간의 혁신이란 기성 관념을 다른 방향으로 고민하고 해결하려 하는 다양한 건축적 노력의 결과라는 것을 보여준다.
오스트리아 빈의 한적한 주택가에 있는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는 1986년에 들어선 임대주택이다. 공동주택 거주자도 각자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고 원하는 대로 공간을 구성하고 변경할 수 있어야 한다는 오스트리아 건축가 훈데르트바서의 철학이 구현된 곳이다. 건물 외형은 장식 없이 기능적이고 직선 형태인 전형적인 무채색 건물들과는 다르다. 부드러운 곡선의 형태, 다양한 건축 재료와 색채로 독특한 개성을 드러내고 있다. 건축에 자연의 특성을 도입함으로써 자연과 인공의 경계를 허물었다. 또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통해 건축이 고정된 인공물이 아닌 하나의 유기체로 느껴지게 했다. 그 결과 자연을 닮은 다양함을 품은 독특하고 자연스러운 건축이 탄생했다. 우리가 주목할 지점은 이곳이 고급 주거지로 디자인된 곳이 아니라 임대주택이라는 사실이다. 한국의 공동주택, 특히 임대주택이 최소한의 기능적인 공간을 제공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으려면 빈의 임대주택을 교훈 삼아야 할 것이다.
네덜란드 출신 건축가 렘 콜하스와 독일 건축가 올레 스히렌이 설계한 싱가포르의 인터레이스는 과거 공동주택과 비교하면 파격에 가깝다. 한국의 전형적인 공동주택이 여러 개의 건물이 수직으로 솟아오르는 방식으로 설계된다면, 인터레이스는 이와는 완전히 다른 수평 적층 방식을 택했다. 대나무 막대기를 활용한 테이블게임 미카도와 비슷하다. 육각형 벌집 모양을 기반으로 건축물 매스(덩어리)를 서로 다른 방향으로 쌓아 올려 배치를 입체화했다. 수직적으로 적층되는 건축물들 사이엔 아이러니하게도 수평적인 단절이 생기는데, 이곳은 주변과 연속되고 연결된 공간을 제공한다. 특히 동과 동 사이에 자연스럽게 생긴 다양한 외부공간을 사용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즐길 수 있다. 천편일률적으로 상품화한 한국의 공동주택이 균일하고 표준화된 패스트푸드식이라면, 인터레이스는 어떤 세대에도 환경과 상황이 겹치지 않는 공간의 개별화를 구현했다. 효율성과 대량 공급이 목적이라면 표준화가 불가피하지만, 다양성과 고급화를 위해서는 인터레이스 같은 방식이 더 유리할 수 있다. 최근 한국의 공동주택이 재건축을 통해 고급화하는 상황에서 다시 한번 고민하게 하는 사례다.
인구 밀도와 부동산 가격이 세계 최고 수준인 홍콩의 주거 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렇기에 기형적인 주거 양식이 생겨나는데, 그중 하나가 창문 없는 방이나 한 평 반 정도밖에 안 되는 극소형의 주거공간이다. 이런 극단적인 주거공간을 대표하는 곳이 익청맨션이다. 홍콩을 배경으로 한 영화 촬영지로 유명한 곳이지만, 실제로 서민들이 거주한다. 거대하고 오래된 빌딩 사이에서 초현실적인 홍콩을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몬스터 빌딩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홍콩 쿼리 베이의 킹스 로드에 있는 초대형 메가 건축물로, 지하와 지상층에는 상가가 형성되어 있고 그 위가 공동주택이다. 처음 보면 낯선 도시풍경에 넋을 잃고 마는데, 홍콩식 '닭장 아파트'의 끝판왕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똑같아 보이는 건축물 입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각 세대의 발코니와 주거공간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곳이야말로 하나의 세대 유닛이 필요에 따라 계속 자라나고 살아 움직이고, 주변 세대가 모여 거대한 전체 건축물을 만드는 진정한 도시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허허벌판에서 살던 인류가 하나의 공간을 정해 머무르고 거주하면서 정주라는 개념이 만들어졌다. 그 장소를 바탕으로 문화와 역사가 시작했다. 그만큼 우리가 어디에 살고 머무느냐가 중요하다. 철학자 하이데거의 에세이 '짓기, 거주하기, 사유하기'는 인류 역사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짓고 사는 공간을 대표하는 집은 작은 오두막에서부터 시작해 구성원이 늘어나면서 독립된 공간으로 확장하고 마을을 형성했다. 근대에 도시가 본격화하면서 사회경제적으로 효율적인 주택인 공동주택이 나타났다. 현대 건축에선 사회적 요구와 선호도를 바탕으로 다양한 공동주택을 선보였다. 한국에선 가용할 땅의 한계 때문에 서울이나 수도권처럼 인구가 집중되는 지역에선 고층의 공동주택이 형성됐다. 주택이 들어설 수 있는 여유의 땅에도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는 것을 보면, 고층주택을 효율성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특정한 사회적 생활양식으로서의 고층주택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의 공공주택은 비용의 효율성, 편리성, 지역적 특성, 생활양식의 선호도와 그 욕망의 결과를 다 합친 결과물인 셈이다. 다 같이 잘살아 보자, 공동주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