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카운터테너는 왕과 왕자, 요정 등 신비한 역할을 주로 했는데 요즘 현대 오페라에서는 악역도 많이 하죠. 잠재된 악의 본능이 스멀스멀 올라와 재미있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실력 있는 성악가들의 잇단 등장으로 카운터테너는 '남성이 드문 높은 음역대를 소화하는 독특한 성부'로만 조명되지 않는다. 이동규(46)는 카운터테너의 '특수 성부'라는 굴레를 벗겨 낸 성악가 중 한 명이다. 18세 때 독학으로 카운터테너에 입문해 오페라에 데뷔했고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 콩쿠르 최연소 입상, 스페인 비냐스 콩쿠르 우승 등의 기록을 썼다. 이후 세계 오페라 무대에 활발히 서고 있고, 최근에는 TV 경연 프로그램 '팬텀싱어4'를 통해 결성된 크로스오버 그룹 '포르테나'의 멤버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이동규가 18년 만의 단독 앨범 '드림 퀼터:꿈을 누비는 자'를 내놓는다. 그는 음반 발매를 하루 앞둔 12일 서울 종로구 크레디아클래식클럽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런저런 형식으로 유튜브에 떠도는 내 연주곡들을 정제된 곡으로 '박제'하고 싶었다"며 "내가 원하는 곡과 대중이 원하는 곡을 모두 넣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2집 발매 후 18년의 긴 세월을 지나 아직까지 노래를 하고 있다는 기적에 놀랍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오페라·콘서트 실황 음반이 아닌 단독 앨범은 2006년 '리플렉션' 이후 처음이다.
음반에는 가장 자신 있는 바로크 음악을 비롯해 낭만주의, 현대음악까지 망라했다. 동요 '섬집아기'도 담았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할머니와 살면서 어머니와의 만남을 손꼽아 기다렸던 개인적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곡이다.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카치니의 '아베 마리아'를 첫 트랙으로,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를 마지막 트랙으로 수록했다.
이번 앨범은 워너클래식 산하 에라토 레이블로 출시된다. 에라토 레이블은 카운터테너 필리프 자루스키, 메조소프라노 조이스 디도나토, 소프라노 디아나 담라우 등 세계 정상급 성악가들의 음반을 발매했다. 한국 연주자로는 소프라노 조수미가 유일하게 이 레이블과 전속 계약을 맺고 10여 장의 앨범을 내놨다. 이동규는 "형편이 어려워 중고 CD 판매점을 전전하던 시절 헨델의 오페라 등 바로크 음악이 에라토에서 주로 나와 많이 수집했다"며 "나도 언젠가 이 초록색 레이블 음반을 발매하고 싶다는 꿈을 가졌다"고 말했다.
카운터테너는 다른 성부에 비해 수명이 길지 않다는 인식이 퍼져 있지만 이동규는 꾸준한 훈련으로 30년 가까이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그는 "운동 선수가 트레이닝을 통해 오래 활동하듯 기초부터 다시 익히는 노력으로 슬럼프를 극복했다"고 말했다.
이달 28일에는 음반 타이틀과 같은 제목으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을 연다. '포르테나'로 함께 활동하는 콘트랄토(알토 음역대를 내는 테너) 오스틴 킴도 출연한다. 이동규는 "'팬텀싱어'를 통해 팬덤을 얻었고, 더 많은 팬이 클래식계로 오는 계기가 됐다"며 "클래식 장르를 한국에서 다시 일으켜 보고 싶다는 묵직한 과제도 얻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