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8월 15일, 제국주의 일본 해군 잠수함 ‘I-25’가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스카항을 출항, 9월 초 미국 북서부 오리건주 블랑코 해안에 도착했다. 잠수함엔 155kg의 폭탄을 실을 수 있는 날개 착탈식 2인승 수상 경비행기 한 대가 실려 있었다.
앞서 8월 초 제국 어전회의에서 31세의 해군 파일럿 소위 후지타 노부오(藤田信雄)는 일왕의 친동생이던 해군사령관 다카마쓰로부터 미국 본토 폭격 임무를 부여 받았다. 연합군이 ’글렌(Glen)’이라 부르던 ‘요코스카 E14Y1’ 수상비행기의 원래 용도는 잠수함에 적재돼 반경 200마일 이내를 정찰하는 용도였다. 잠수함으로 미국 본토 해안에 최대한 접근한 뒤 그 비행기를 띄워 미국 해군기지를 타격하자는 아이디어를 낸 게 후지타였다.
후지타와 부기장 오쿠다 쇼지 하사는 1942년 9월 9일 새벽 바다를 이륙, 블랑코 곶 등대를 지나 내륙으로 약 80km를 비행한 뒤 인근 타이가 숲에 77kg급 소이탄 하나를 투하했다. 2700도 고열과 함께 직경 약 90m를 잿더미로 만들 수 있는 폭탄이었다. 비행기는 다시 동쪽으로 약 10km를 이동한 뒤 두 번째 폭탄을 투하하고 저공비행으로 잠수함 인근 해상으로 복귀, 잠수함 격납고에 실렸다. 대공 방어망이 없는 무인지대의 숲을 목표로 정한 까닭은 당연히 경비행기의 느린 속도와 부실한 전투력 때문이었다. 그들은 대형 산불로 미국인에게 본토 공습의 공포심과 혼란을 야기하고자 했다. 후지타와 오쿠다는 9월 29일 자정 직후 다시 이륙해 숲에 소이탄 2개를 투하했다.
원래 잠수함에 적재한 소이탄은 6발이었지만 악천후와 풍랑이 이어지면서 세 번째 임무를 포기한 그들은 10월 11일 요코스카로 복귀했고, 일본 언론은 미군의 도쿄 공습(1942년 4월 18일)에 대한 보복에 성공했다고 대서특필하며 그들을 국민적 영웅으로 소개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