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병자를 돕던 중세 가톨릭 교회의 의료 봉사에서 유래했다는 호스피스 제도가 지금처럼 말기 환자의 육신과 영혼의 아픔을 덜어주는 행위로 전문화한 것은 약 60년 전부터다. 영국인 간호사 출신 의사 시슬리 손더스(Cicely Saunders)가 1967년 영국 런던에 인류 최초의 전문 호스피스 병원인 성 크리스토퍼 호스피스를 설립했고, 1971년 미국에서도 예일대 간호대 학장이던 플로렌스 월드(Florence Wald)의 주도로 호스피스 협회를 만들었다.
앤 암스트롱 데일리(Ann Armstrong-Dailey, 1940.8.13~2024.5.22)는 죽음이 생로병사의 생물학적 질서에 늘 순종하지 않으며, 어린이들의 죽음도 노년 못지않게, 어쩌면 더 당사자와 남은 이들에게 끔찍한 고통을 안긴다는 사실에 주목, 1983년 비영리 ‘어린이를 위한 국제호스피스(CHI)’를 만든 미국의 사회봉사 활동가다.
제2차 세계대전 참전 군인 아버지와 주부 어머니의 2녀 1남 중 장녀로 태어난 그는 아버지의 주둔지 하와이에서 일본의 진주만 공습을 겪었다. 가미카제 전투기의 기총사격을 피해 다친 몸으로 만 4세의 그를 안고 내닫던 어머니, 다섯 자녀 중 넷을 전쟁 등으로 잃은 할머니를 기억하던 그는 아이들의 죽음이 가정과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에 민감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어린이 한 명이 중증질환 진단을 받으면 가족과 친구, 지역사회 300여 명에게 영향이 미친다고 한다. 그는 "어린이도 마지막 나날까지 충만한 삶을 살 권리가 있다”고 여겼다. 미국의 호스피스 병원(1,400여 곳) 중 어린이를 받아들이는 곳은 단 4곳에 불과한 시절이었다.
그는 의회와 인도주의 재단 등을 대상으로 어린이 호스피스 서비스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치료와 완화치료의 병행 등 말기 어린이 환자의 특성에 맞는 호스피스 통합서비스 프로그램 등을 개발했다. 미국의 만 1~14세 어린이 사망률(10만 명당 사망자 수)은 2022년 기준 19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