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관 광복절 경축식이 올해 열리지 않는다. 뉴라이트 역사관으로 논란을 빚는 신임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이 취임 직후 결정한 일이다. 독립기념관이 광복절 경축식을 열지 않는 것은 1987년 개관 이후 처음이다.
독립기념관은 오는 15일 오전 10시부터 겨레의 집 일대에서 독립운동가 후손과 참가를 희망한 100가족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 예정이던 ‘광복절 경축식’을 취소한다고 12일 밝혔다.
서혜원 독립기념관 홍보부장은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김형석 신임 관장이 (서울에서 열리는) 대통령 주최 정부 행사에 참석 요청을 받았다”며 “기관장이 없는 상황에서 기관장 인사, 만세삼창 같은 이벤트를 할 수가 없기에 경축식 행사 진행이 어렵다고 9일 보고했고, 내부 논의를 거친 후 김 관장이 경축식 취소를 최종 결정했다”고 말했다. 김 관장은 8일 취임했다.
독립기념관은 15일 오후 2시 30분부터 예정된 공연 행사는 예정대로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광복절에 독립기념관이 경축식을 열지 않는 것은 개관 37년 만에 처음이다. 지난 2021년 코로나19 확산으로 비대면 행사가 열리기도 했지만, 광복절을 기념하지 않은 해는 없었다. 1987년 42주년 광복절에 문을 연 기념관은 정부의 매년 공식 행사와 별도로 경축식과 다채로운 문화 행사를 열어 광복의 기쁨을 나누고 순국열사들을 추모해 왔다.
서 부장은 또 “우리가 광복절 행사를 준비하던 중에 관장이 바뀐 적이 없었고, 정부가 관장한테 직접 연락해서 ‘정부 행사에 꼭 참여해 달라’는 요청을 한 적도 없었다”며 행사 취소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차관급인 독립기념관장이 정부 행사의 기본 초청 대상자임을 감안하면 설득력은 떨어진다. 국경일 등 의전행사를 주관하는 김한수 행정안전부 의정관은 “우리가 (독립기념관장을) 초청한 것은 맞지만 지금까지 매년 초청장이 나갔고, 자체 행사를 치르느라 (대통령 행사에는) 참석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번에 전화를 따로 해서 초청하거나 한 일은 없다”고 말했다.
독립기념관 광복절 경축식 행사 취소는 뉴라이트 역사관으로 논란을 빚는 김 관장의 취임과 그에 따른 시민단체의 극심한 반발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독립기념관 노조는 이날 성명을 내고 “광복절 경축식을 별안간 취소해 광복절에 대한 너무나 가벼운 인식을 드러내고 많은 국민에게 당혹감과 실망을 줬다”며 김 신임 관장의 사퇴를 촉구했고, 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도 충북도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 관장의 임명 철회를 요구했다. 앞서 10일엔 민족문제연구소와 천안 지역 14개 단체로 이뤄진 천안민주단체연대회의 등 시민단체들이 독립기념관 겨레의 마루에서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 윤석열 정권 규탄’ 집회를 갖기도 했다.
논란은 정치권으로 빠르게 옮겨붙었다. 더불어민주당 충청권 국회의원 21명은 이날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친일파를 미화하고 역사왜곡을 자행한 김형석 독립기념관 관장 임명을 철회하고, 즉각 사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기자회견을 공동주최한 박정현 의원은 모두발언에서 “충청 지역은 일제강점기 수많은 열사와 의사를 배출한 역사적 자부심을 갖고 있는 지역”이라며 “대일 저자세 외교를 넘어 뉴라이트 친일 인사를 독립기념관장에 임명 강행한 윤석열 대통령은 역사 쿠데타를 자행하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논란이 확산하자 김 관장은 이날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지방보훈청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해 " 독립운동가를 폄훼하고 일제강점기의 식민 지배를 옹호한다는 의미로 말하는 '뉴라이트'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독립운동을 폄훼하고 일제 식민 지배를 미화하는 관장을 임명하는 것은 헌법정신과 역사적 정의에 반하고 '독립기념관법'에 위배되는 불법이자 불의"라며 "독립운동 세력을 약화, 분열시키고 민족혼을 빼는 일제강점기 밀정 같은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7일 임명된 김 관장은 광복회와 야권 등으로부터 이른바 뉴라이트 인사로 지목되며 사퇴 요구를 받았다. 그가 지난해 12월 '자유민주를 위한 국민운동' 행사에서 "대한민국이 1945년 8월 15일 광복됐다며 그게 광복절이라고 이야기하시는 분들이 참 많은데, 역사를 정확하게 모르는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 15일이야말로 진정한 광복”이라고 주장했고, 이를 두고 독립기념관장직을 맡기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