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학기부터는 서울대에서 마르크스경제학 강의가 사라진다. 카를 마르크스가 정립한 마르크스경제학은 공산주의 체제 붕괴 이후 효용성을 잃었다는 평가를 받아 왔지만, 여전히 주류 경제학의 빈자리를 채우는 학문적 토대를 제공하고 있다는 평가도 함께 받고 있다.
11일 서울대에 따르면 이 학교 경제학부는 2학기에 △정치경제학 입문 △마르크스경제학 △현대 마르크스경제학 강의를 모두 개설하지 않기로 했다. 경제학부 교수들로 구성된 교과위원회는 "교과과정 운영과 강의 수요·공급 상황을 고려해 이번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서울대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강의들은 고(故) 김수행 경제학부 교수가 1989년 부임한 이후 처음 개설됐다. 김 교수가 2008년 퇴임한 후 대학원생들이 마르크스경제학 전공 교수를 채용할 것을 촉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후로 강성윤 강사가 해당 과목들을 맡아 정치경제학입문은 매 학기, 마르크스경제학과 현대마르크스경제학은 1학기와 2학기에 개설해 왔다.
강의가 중단된 이유는 전체 교수진이 부족해서다. 현직 경제학부 교수 38명 중 김소영 교수(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장용성 교수(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이재원 교수(한국은행 경제연구원장) 등이 공직 수행으로 강의를 맡지 못하고 있다. 또 정년 보장(테뉴어) 심사기준을 강화하는 대신 강의 부담을 줄이면서, 강의 규모를 유지하려면 교원 수를 늘려야 한다.
마르크스경제학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것도 원인이다. 2021년 2학기 93명에 달했던 정치경제학 입문 수강생은 이듬해 1학기 34명, 2학기 61명으로 조금씩 줄더니 작년엔 1학기 29명, 2학기 25명으로 더 감소했다. 올해 1학기에는 30명이 강의를 들었다. 마르크스경제학 수강생은 2021년 1학기 14명에서 지난해 2학기 4명으로 크게 줄었다.
특정 분야 학문을 아예 가르치지 않는 상황을 두고, 학문적 다양성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강 강사는 지난달 19일 대학생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경제학 주류와 다른 접근방식을 취하는 마르크스경제학 분야를 배제하고 있지 않은지 우려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학생들의 관심이 낮아진 상황을 고려하면 어쩔 수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서울대 경제학부 한 교수는 "미국·영국에서 마르크스 수업을 가르치는 학교가 몇이 되나"면서 "이수 필요성이 있다면 강의를 열 수 있지만, 어떤 과목을 가르칠지 결정하는 건 학교 사정에 따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서울대 관계자는 "과목이 폐지가 된 건 아니고 이번 학기에 열리지 않는 것"이라며 "다음 학기에는 강의가 열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