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의 김경수 전 경남지사 복권 추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댓글 조작을 통한 민주주의 파괴 범죄에 면죄부를 주면 안 된다'는 보수 여론을 등에 업었다. 당정 파열음도 개의치 않는 기색이다. 지지층을 결집하며 윤 대통령과의 차별화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한 대표의 측근 인사는 11일 한국일보에 "민주주의를 흔든 악질적 범죄를 저지르고도 반성 표명이 없는 김 전 지사의 복권은 부적절하다는 것이 한 대표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한 대표는 대통령실에 이런 의견을 여러 차례 전달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대통령실이 "사면·복권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며 불쾌한 반응을 보이면서 당정 충돌로 번지고 있다. 친윤석열계 중진 권성동 의원은 본보 통화에서 "여당 대표로서 비공개로 대통령실에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 관행이고 적절하다"며 "당정 갈등으로 비화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한 대표 생각은 다르다. 당이 민심을 전달하는 통로 역할을 적극적으로 해야 당정관계가 합리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당 지도부 관계자는 “‘사면·복권은 대통령의 권한이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대로라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에 대해서도 당은 입도 벙긋하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박했다.
'2022년 법무부 장관 재임 시 김경수 전 지사 사면에 동의했던 한 대표가 복권에는 반대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대통령실의 비판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친한동훈계로 꼽히는 박상수 국민의힘 대변인은 페이스북을 통해 "사면과 복권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므로 휘하의 장관이 반대한다고 막을 수 있는 일은 아니며 (한동훈 당시) 장관은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뜻을 끝까지 반대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앞서 빚어진 당정 갈등과는 다른 점도 있다. 한 대표는 이번엔 보수 충성 지지층 편에 섰다. 그는 채 상병 특검이나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을 두고도 윤 대통령과 각을 세웠지만 그때는 "국민 눈높이"를 앞세웠다. 중도 확장을 꾀한 것인데 그 반작용으로 대구·경북(TK) 등 보수 주류 일각에선 한 대표의 '색깔'에 의문을 품었다. '한동훈 강남좌파설'이 불거진 배경이다.
그러나 친문재인계 적통으로 꼽히는 김 전 지사의 복권은 보수 지지층일수록 반대가 더 극심하다. 실제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는 김 전 지사 복권을 성토하는 글이 잇따르고 있다. 친윤계도 한 대표를 비판했다가 자칫 보수층 정서를 거스르는 상황을 의식해 권 의원을 제외하면 말을 아끼고 있다.
야당은 이례적으로 윤 대통령을 옹호하며 한 대표를 비판했다.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다행히 '사면 복권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고 대통령실에서 정리했기에 망정이지 사면 복권 권한마저 한 대표가 가진 것으로 착각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올렸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통화에서 "한 대표는 김 전 지사 복권 반대로 잃을 것이 없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윤 대통령이 김 전 지사 복권을 강행한다면 한 대표는 윤 대통령과 차별화하며 보수 지지층을 결집할 수 있고, 복권이 불발되면 윤 대통령이 한 대표의 제안을 받아들인 모양새가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