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산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아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끼친 티몬·위메프(티메프) 사태의 불똥이 모든 전자상거래 사이트의 안심결제(에스크로) 의무화라는 잘못된 방향으로 튀고 있다. 안심결제란 제3자가 판매대금을 보관하고 있다가 소비자가 구매를 확정하면 판매자에게 대금이 전달되는 서비스다.
정부가 지난 7일 발표한 '티메프 사태 대응 방안'을 보면 지급결제대행사(PG)의 안심결제를 의무화했다. 신용카드 결제를 대행하는 PG사의 안심결제 의무화는 곧 모든 전자상거래 사이트가 무조건 안심결제를 도입하라는 소리다.
결론부터 말하면 황당하고 근시안적 정책이다. 국내 신생기업(스타트업)과 소비자들에게 불리하고 외국 기업과 거대 기업에 절대 유리하기 때문이다. 전자상거래는 취급하는 상품과 서비스에 따라 안심결제가 가능한 분야가 있고, 어려운 분야도 있다. 사업별 특징을 무시하고 천편일률적으로 강제하면 역차별과 소비자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해외 호텔을 싸게 이용하려면 몇 달 전 예약해야 한다. 그런데 안심결제를 도입하면 여행 사이트는 이용자가 예약한 해외 호텔에 돈을 보내 방을 잡아 놓은 뒤 몇 달을 기다렸다가 이용자가 숙박할 때 돈을 받아야 한다. 물론 지급보증보험을 들면 되지만 비용이 들기 때문에 이용자에게 제공하는 할인폭이 줄어든다. 이렇게 되면 안심결제 적용을 받지 않는 해외업체들만 유리해 명백한 역차별이 된다.
또 관련 비용이 필요한 안심결제 의무화는 이미 안심결제 체계를 갖춘 대형 사이트들에 유리하다. 대형 전자상거래 위주로 시장이 재편되는 쏠림 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 업계에서는 대형 사이트들이 정부 발표를 듣고 속으로 웃는다는 말이 나온다. 즉 정부가 나서서 시장 독과점을 부추기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소비자도 손해다. 경쟁이 사라지고 시장을 지배한 사업자가 가격을 올리면 소비자는 방법이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부 스타트업들은 본사를 해외로 옮길 생각까지 한다. 정부가 해외 전자상거래 사이트에는 안심결제를 강제할 방법이 없으니 본사를 해외로 옮겨 아마존처럼 해외에서 사이트를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정부가 나서서 국내 스타트업들을 내쫓는 꼴이 될 수 있다.
이런 식이면 스타트업 생태계와 일자리 창출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벤처투자사들은 규제가 심한 전자상거래 스타트업에 투자를 기피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관련 창업도 일어나지 않아 일자리 창출도 줄어들게 된다.
문제를 바로잡으려는 정부의 노력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다만 규제는 핀셋처럼 정교해야 한다. 두루뭉술하고 천편일률적인 규제는 빈대 잡으려다가 초가삼간 태우는 식으로 엉뚱한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다.
티메프 사태는 모회사인 큐텐 경영진이 티메프의 정산금을 다른 사업 확대를 위해 유용한 것이 원인이다. 전문가들은 기존의 대규모유통업법과 전자금융거래법을 강화해 티메프 사태의 재발을 막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번 정부 발표를 보면 지난 5월 해외 직구한 어린이 용품에서 유해물질이 나오자 정부가 해외 직구 제한을 발표했다가 철회한 소동이 떠오른다. 그때도 부작용이 더 커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번에도 해외 직구 제한처럼 정부의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미숙한 정책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재고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