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원가보단 대형병원서 사태 관망? 사직 전공의들, 촉탁의로 복귀 조짐

입력
2024.08.08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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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의로 취업하면 전공의 임금의 4배 
큰 병원 경력 쌓아야 개원가 진출 유리
병원은 전공의 공백 메우기에 안성맞춤
인건비 부담에 채용 규모는 제한적일 듯

의대 증원에 반발해 수련병원을 사직한 전공의 대부분이 하반기 추가모집에 지원하지 않아 '전공의 없는 병원' 사태 장기화가 우려되는 가운데, 사직 전공의의 '일반의 촉탁의' 전환이 사태를 완화할 수 있는 방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촉탁의란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계약직 의사로, 주로 전문의를 채용하지만 입원전담의 등에 한해선 일반의를 모집하기도 한다.

실제로 대형병원에서 잇따라 일반의 촉탁의 채용에 나서고 있는데, 병원과 전공의 모두가 손해 보지 않는 거래라는 평가가 나온다. 병원 입장에선 전공의 빈자리를 사직 전공의로 메우는 방식으로 의료진 과부하를 덜 수 있고, 사직 전공의는 대형병원에서 계속 경력을 쌓으면서 전공의 때보다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8일 의료계에 따르면,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 여러 곳에서 전공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일반의 촉탁의를 모집하고 있다. 부산백병원은 내과, 마취통증의학과, 응급의학과 등에서 근무할 일반의 30명을 모집하면서 해당 진료과 수련 경험이 있는 의사를 우대한다는 조건을 걸었다. 내과계 야간 당직의로 일반의를 모집하는 건국대병원도 내과 수련 경력을 우대사항으로 정했다. 대구가톨릭대병원은 인턴 과정을 수료한 일반의를 채용하고 있는데, 이들에게 병동의 인턴 업무를 맡길 계획이다. 국립암센터는 내과 입원전담의를 모집하면서 내과 전문의는 물론 내과 전공의 경험자와 인턴 수료자도 지원할 수 있게 했다.

의료계는 사직 전공의들이 촉탁의 모집에 적극 지원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수련 복귀를 위해 하반기 모집에 지원한 비율은 1.4%로 극히 낮았지만, 일반의로 취업해 임상 현장으로 돌아오는 분위기는 뚜렷하기 때문이다. 전날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이달 5일 기준 사직 레지던트의 11%인 625명이 일반의로 취업했다. 지난주 집계치 258명에서 2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59%가량(368명)은 의원급에 취직했지만, 병원급 이상도 257명으로 적지 않았다. 이들 가운데 대형병원 촉탁의 근무자가 있는지에 대해 복지부는 "개인이 특정될 수 있기 때문에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의료계에선 전공의 입장에서 향후 커리어를 생각하면 대형병원 촉탁의로 근무할 유인이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서울 소재 한 종합병원 관계자는 "무작정 일반의로 개원가로 뛰어들기에는 전공의들 경력이 부족하다"며 "큰 병원에서 좀 더 경력을 쌓는 편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촉탁의 임금 수준이 전공의 때보다 훨씬 높다는 점도 메리트다. 국립암센터는 입원전담의 공고에서 내과 전공의를 1년 이상 수료한 경우 월 급여가 1,200만 원이라고 명시했다. 2022년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조사한 전공의 평균 임금(398만 원)의 3배다.

다만 병원 입장에선 인건비 부담이 있어 촉탁의 채용을 마냥 늘릴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한 빅5 병원(5대 상급종합병원) 관계자는 "현재는 병원에 일반의 촉탁의가 많아야 2, 3명인데, 전공의들이 복귀하지 않으면 촉탁의 채용이 더 늘어날 것 같다"며 "다만 전공의 월급보다 많은 임금을 줘야 해 병원 재정에 부담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라고 밝혔다.

박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