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헌법 개정 시 일본 자위대도 헌법에 담자"고 주장해 논란이 예상된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 국가라는 이유로 '평화헌법'(군대 금지)을 유지해 온 일본이 자위대를 헌법에 명시하면 군대를 보유한 '보통 국가'로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가는 셈이기 때문이다. 다만 기시다 총리가 9월 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두고 '표를 의식한 전략적 발언'을 내놓은 것이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8일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기시다 총리는 전날 일본 집권 자민당 헌법개정실현본부 회의에서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를 할 경우, 긴급사태 관련 조항과 함께 자위대 표기도 국민 판단을 받고 싶다"며 이같이 밝혔다. 기시다 총리는 당에 '이달 말까지 헌법 자위대 표기 방안 논점을 정리하라'고 지시했다. 이르면 9월부터 자위대 표기를 쟁점화해 헌법 개정에 대한 의욕을 내비친 것이다.
일본은 2차 대전 이후 헌법 9조에 군대 보유 및 전쟁 금지를 명시했다. 공식적으로는 군대가 없는 나라인 만큼, 헌법에도 자위대 근거 규정이 없다. 기시다 총리의 바람대로 자위대의 근거가 헌법에 담기면 그동안 유지해 온 헌법 9조의 근간도 흔들린다.
이 때문에 일본 정치권, 특히 자민당에서조차 '너무 갑작스럽게 나온 주제'라며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자위대 근거 명시를 위한 헌법 개정은 8년 9개월간 재임하며 일본 최장수 총리에 오른 아베 신조 전 총리도 반발 여론을 의식해 쉽게 진행하지 못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연립여당인 공명당은 헌법 9조 개정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이고, 자민당 안에서도 엇갈린다"고 지적했다.
충분한 사전 논의 없이 진행하면 오히려 거센 반발에 부닥칠 가능성도 크다. 도쿄신문은 "대규모 재해 발생 시 국회의원 임기를 연장하는 '긴급사태 관련 조항'은 야당과의 논의가 상당히 진행된 반면, 자위대 명시는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기시다 총리가 갑자기 꺼낸 얘기"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기시다 총리가 헌법 9조 개정 실현 가능성이 작은 것을 알면서도 총재 선거를 염두에 두고 전략적으로 꺼낸 발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헌법 9조 개정은 자민당 내 강경 보수 세력이 염원하는 과제다. 여기에다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과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장관 등 총재 후보군에 오르내리는 인사들이 최근 헌법 개정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헌법 개정 이슈에서 동떨어진 것처럼 비치지 않으면서 '이슈 선점'을 하기 위해 꺼내 든 포석이라는 뜻이다.
마이니치신문은 기시다 총리와 가까운 한 인사의 언급을 인용해 '재선을 노린 전략'이라며 "총재 선거 경쟁자들이 헌법 9조 개정을 언급하는 상황을 염두에 뒀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도 "선거를 앞두고 헌법 개정을 바라는 의원들 및 당원들에게 호소하고자 한 발언"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