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주식·채권 투자 연평균 18% 늘어… 환율 상승 압력"

입력
2024.08.08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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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연구원 보고서
해외증권투자 2010년의 9배 급증
외환수요 늘어나 환율 높이는 작용
"물가 불안 없도록 당국 노력해야"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국내 거주자의 해외주식과 해외채권 투자가 환율 상승 압력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지금과 같은 고물가·고환율 상황에선 당국이 환율 안정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는 주문이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승호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내놓은 보고서에서 해외증권투자 현황과 외환시장 영향을 분석해 이같이 밝혔다. 2010년 초 1,000억 달러에 불과하던 해외증권투자 규모는 지난해 말 8,573억 달러(해외주식 72.7%, 해외채권 27.3%)로 9배 가까이 느는 등 빠른 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2015~2023년 연평균 18.1%의 증가율이다. 이미 외국인의 국내 증권투자잔액(지난해 9,520억 달러)에 육박하고, 곧 넘어설 것으로 이 위원은 예상한다.

우리나라 해외증권투자 잔액이 급속도로 확대된 건 경상수지 흑자 기조가 이어지며 외화 유동성이 늘어난 데다, 국내 금융자산 투자 매력도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해외 금리가 국내 금리를 상회하자 해외채권에 대한 투자 관심이 상대적으로 높아졌고, 해외주식 역시 미국 등 주요 선진국 주가 상승률이 국내 주가 상승률을 웃돌아 투자 유인이 강화됐다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지난해 말 개인투자자 해외증권투자 잔액이 800억 달러에 육박해 민간부문의 20%를 차지하는 등 공격적 성향의 ‘서학개미’가 급속히 늘고 있는 점도 주요 특징으로 꼽힌다.

문제는 환율이다. 우리나라 거주자가 해외증권에 투자하려면 일단 외화를 조달해야 하기 때문에 외환수요 압력을 증가시킬 수밖에 없다. 이 위원은 실증분석 결과 원·달러 환율은 해외주식은 물론 해외채권 투자에도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양(+)의 영향을 받았다고 분석했다. 국민연금 등 대형 기금은 해외채권 투자 때 환헤지(환율 변동 위험성을 없애는 것)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환헤지 전략을 채택한 경우에도 외환스와프 시장의 외환수요 증가가 현물환 시장에 유동성 압력을 가해 환율에 간접적 영향을 줬다는 것이다.

달러 가치가 더 오르면 수입물가가 비싸져 물가 상승을 자극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이 위원은 “정책당국은 거주자의 해외증권투자 증가가 환율 상승을 가속화시켜 물가 불안이 확대되지 않도록 환율 안정에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만 해외증권투자의 긍정적 측면도 함께 부각했다. 국외 금융 자산을 쌓아 소득수지 흑자에 기여하고, 국내 외화유동성이 나빠졌을 때 안전판이 된다는 것이다. 이 위원은 “머지않아 미국 통화정책이 완화적 기조로 변하면 해외증권투자 확대 추세가 원화환율의 하락 압력을 완화해 환율 안정에 기여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유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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