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8일 "에너지 취약계층 130만 가구를 대상으로 전기요금 1만5,000원을 추가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불과 사흘 전 전기료 '감면'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일단 재정 지원 카드를 먼저 꺼냈다. 당내에서는 전기료 감면에 부정적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출신 추경호 원내대표를 의식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한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역대급 폭염이 계속되고 있고 많은 취약계층이 더 큰 고통을 받고 있다"며 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국민의힘과 정부, 대통령실은 지난 6월 고위 당정대 협의회를 통해 130만 가구를 대상으로 에너지바우처 5만3,000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지난해 대비 1만 원 오른 것으로 2022년 3,000원이 인상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인상폭이 큰 편인데, 한 대표가 여기에 1만5,000원을 추가로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그는 4인 가구 하계 월평균 전기료가 7만6,000원이란 점을 언급하며 "폭염 기간 동안 (취약계층의) 전기요금에 제로(0)에 가깝게 지원하겠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한 대표는 '지원'보다는 '감면'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5일 최고위에서 같은 당 정동만 의원이 발의한 전기사업법 개정안을 언급하며 "민주당의 박주민·전재수 의원도 유사한 법안을 발의했기 때문에 신속히 여야 합의해 민생법안으로 협의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해당 법안은 △국가유공자 △기초생활 수급자 및 차상위 계층 △경로당 △사회복지시설 △장애인 등을 대상으로 전기료 '감면' 근거를 마련하는 게 주요 골자다. 전기료를 직접 깎아주는 것으로 천문학적인 부채를 안고 있는 한국전력공사의 재정난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2021년 2분기부터 올 2분기까지 한전의 누적적자는 41조867억여 원이다.
이 때문에 추 원내대표는 당시 비공개 최고위에서 한전 재정난 등을 거론하며 전기요금 감면은 불가하단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한 원내 관계자는 "전기와 가스 등 공공요금 부채가 250조 원에 이른다"며 "감면은 불가하다. 요금을 동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인하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 대표가 이날 공언한 대로 취약계층을 지원하기 위해 기존 예산(1,400여억 원)에 산업통상자원부 예산 180억 원이 추가된다. 추 원내대표는 1만5,000원 추가 지원에 대해 "실효성이 적다"는 입장이지만, 전날 관계 기관 보고를 듣고 한 대표의 주장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는 이날 개인적 일정을 이유로 최고위에 불참했다.
출범 2주 만에 여당 투톱이 엇박자를 내면서 갈등이 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이 추진 중인 전 국민 25만 원 지원법에 대한 국민의힘 필리버스터에 대해 한 대표가 "여론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우려를 표하자, 추 원내대표는 "포퓰리즘 악법이다. 원내 지도부 논의가 끝난 상황"이라고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