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당신들보다 많다" 영국 '극우 폭동' 포위한 맞불 반인종주의 시위대

입력
2024.08.08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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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 지원 센터 등 타깃 폭동 예고에
영국 각지서 수천 명 '인간 방패' 형성
초고속 재판에 극우 폭도 3명 징역형
당국 엄포에도 혼란 당분간 이어질 듯

"우리가 너희(극우 폭동 세력)보다 많다. 부끄러운 줄 알라."

'어린이 댄스학원 흉기 난동' 사건과 관련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허위정보가 촉발한 영국의 반(反)이민·반무슬림 극우 시위대의 폭동이 거센 역풍을 맞기 시작했다. 극우의 방화·폭력 등 행위가 '공동체 위협' 수위에까지 이르자, 이를 감지한 여론이 '인종주의 반대'를 외치며 대규모 맞불 시위에 나선 것이다.

맞불 시위대, '인간방패' 형성… "인종주의 거부"

7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이날 런던, 리버풀, 버밍엄, 브리스틀 등 영국 곳곳에서 인종주의와 극우에 반대하는 시위대 수천 명이 거리로 나섰다. 피켓에는 "인종주의를 거부한다" "사랑하라, 증오하지 말라" 등 문구가 적혀 있었고, "나치들은 거리에서 나가라"는 구호도 울려 퍼졌다.

맞불 시위가 조직된 계기는 '극우 세력이 이날 전국 이민자지원센터 및 법률상담소, 모스크(이슬람 예배당) 등 100여 곳을 겨냥한 시위를 계획하고 있다'는 정보였다. 텔레그램을 통해 극우 시위대가 향할 장소 목록이 미리 퍼진 것이다. 이민자센터 등은 문을 잠갔고, 경찰은 해당 장소들에서 경비 근무를 섰다. 그럼에도 '가만히 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여긴 시민들이 '방어'에 나선 셈이다.

맞불 시위대는 극우 세력의 공격 대상으로 거론된 장소에 집결, '인간 방패'를 형성했다. 거센 반발에 놀란 탓인지 극우 시위는 이날 예상보다 잠잠했다. 브라이튼에선 극우 시위대 8명이 난민전문 변호사 사무실 인근에서 시위를 하려다 2,000명에게 포위되는 모습도 연출됐다고 영국 BBC방송은 전했다. 양측 충돌에 대비하기 위해 경찰 6,000여 명이 투입됐지만 별다른 폭력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일주일 만에 극우 폭도 3명 징역형 선고

극우의 폭동은 지난달 29일 사우스포트 댄스학원에서 벌어진 흉기 난동으로 어린이 3명이 숨진 사건과 관련, SNS에 '범인은 무슬림 망명 신청자'라는 거짓 정보가 퍼지면서 촉발됐다. 극우 시위대는 이슬람 상점과 모스크, 이민자 숙소로 몰려가 방화 등을 일삼았고, 경찰이 "범인은 영국 웨일스 수도 카디프 태생 17세 남성"이라고 공식 발표했음에도 폭력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현재까지 폭동으로 체포된 이들은 430명, 기소된 사람은 140여 명이다. 영국 법원은 이들 중 폭력 시위 가담자 세 명에게 징역 20~36개월을 각각 선고했다. 폭동 일주일 만에 체포에서 선고까지, 말 그대로 '초고속 사법처리'가 이뤄진 셈이다. 영국 정부는 향후 처벌 대상자가 대폭 증가할 것으로 보고, 500곳 이상의 추가 수용시설을 마련하기로 했다.

당국은 폭력 시위 주동자들에 대해선 '테러 혐의'도 적용할 방침이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거리나 온라인에서 폭력과 무질서를 유발하는 이들은 법의 완전한 힘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의 엄정 대응에도 혼란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경찰은 이번 주말 또다시 극우의 대규모 폭동이 예상된다고 경고했다.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이 '이민 문제'를 둘러싼 영국 사회 분열과 갈등이라는 점에서, "폭동은 사그라들 수도 있고, 불쏘시개가 돼 더 타오를 수도 있다"고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내다봤다.

위용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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