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상담전화 받게 하고 교육생이라며 일당 2만원 줘"

입력
2024.08.08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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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센터 상담사들 '교육생의 덫' 증언
입사 후 몇 달간 교육 명목으로 부리고
업무평가 합격해야 정식 근로계약 체결
"콜센터 교육생 노동자로 인정해야"

"하루에 100통 넘는 콜(상담 전화)을 받는데도 교육생이라고 하네요. 일당은 하루에 교육비 2만~3만 원이 전부죠. 현대판 노예계약입니다."

대한항공·스타벅스·마켓컬리 등 주요 기업 콜센터 상담원들이 8일 오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회관에서 '할말 잇 수다' 기자회견을 열고 "콜센터 교육생을 노동자로 인정하라"고 외쳤다. 이들은 콜센터 교육생들이 실제 고객 응대 업무에 투입되고 있지만 신분이 교육생으로 설정돼 최저임금도 받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교육생의 덫'에 빠졌다는 설명이다.

이들의 주장은 이렇다. 현재 대기업 대부분은 콜센터 상담 업무를 외부 용역업체에 맡기고 있다. 용역업체는 채용공고 사이트를 통해 콜센터 상담사들을 채용하고는 일정 기간을 '교육 기간'으로 두고 업무 매뉴얼과 실무를 숙지시키고 이후 업무 평가를 통해 최종 합격 여부를 결정한다. 계약서도 '고용 계약'이 아닌 '교육 계약'으로 쓴 뒤 최종 합격 후 정식 계약을 하는 경우가 많다. 교육생들은 교육 계약의 의미가 뭔지 모르는 경우도 있고, 알더라도 취업이 급해 울며 겨자 먹기로 계약서를 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들은 "교육 기간에도 수백~수천 쪽에 달하는 회사 매뉴얼을 외우고 많게는 하루에 100통 넘는 전화를 받고 있다"며 "교육이 아니라 회사에 실질적인 노동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교육기간 풀타임(오전 9시~오후 6시) 근무를 하고도 하루 일당은 교육비 명목의 2만~3만 원 수준이라며 "최저임금도 못 받은 채 노동을 착취당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콜센터 상담원들은 교육생을 시용 노동자로 인정하고 교육 기간에 제대로 받지 못한 월급을 모두 돌려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콜센터 교육생이 시용 노동자로 인정받으면 최소한 최저임금은 보장받게 된다.

"최저임금도 못 받고 콜센터 업무"

2016년부터 '1357 중소기업통합콜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김민선씨는 "중소기업통합콜센터는 상담사를 채용해 교육과정 20일과 수습과정 두 달을 거쳐 최종 합격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며 "교육비는 최저임금도 되지 않는 일 3만 원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20년째 금융권 콜센터에서 근무 중인 김현주(공공운수노조 든든한콜센터지부장)씨는 "2005년 국민카드 하루 교육비는 2만 원이었고 2011년 하나은행 교육비는 점심값 포함 2만5,000원이었다"며 "20년이 넘도록 상황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올해 5월 마켓컬리 콜센터에서 근무했다는 김모씨는 "교육기간 고객 컴플레인 대응, 일대일 게시판과 오픈카톡방 상담, 오배송 조치 등 실제 업무를 진행했다"면서 "하루 교육비를 시급으로 나누면 시간당 5,000원도 받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대한항공 콜센터에서 6주 동안 교육을 받았던 상담사는 "입사 후 12일 동안 의무적으로 근무하지 않으면 교육비를 받을 수 없어 퇴사조차 못 했다"고 말했다. 세계적 기업인 스타벅스 콜센터에서 일했던 허모씨도 하루 교육비가 4만 원 수준이었다고 밝혔다.

이들은 고용노동부가 이런 행태를 사실상 방치했다고 비판했다. 마켓컬리 콜센터에서 일한 김씨는 "임금체불로 신고하니 근로감독관은 계약서를 썼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했다"며 답답해했다. 지난달 고용부 부천고용노동지청이 콜센터 교육생을 노동자로 인정한 사례를 김씨가 근로감독관에게 제시하자 "그 사례는 그 사례일 뿐"이라며 선을 그었다고 한다.

하은성 샛별노무사사무소 노무사는 "콜센터 교육생은 말이 교육생일 뿐 아파도 쉬지 못하고 화장실 갈 시간도 없는 고강도 노동자"라며 "고용부는 콜센터 교육생이 노동자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송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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