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최규선 게이트(2002)

입력
2024.09.09 04:30
25면

편집자주

매일매일, 시시각각 한국일보 플랫폼은 경쟁매체보다 빠르고 깊은 뉴스와 정보를 생산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1954년 창간 이래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거나 국민적 감동을 이끌어낸 수많은 특종이 발굴됐다. 지난 70년 다수의 특종과 사건 중 파장이 컸던 내용들을 연도별로 안배해 ‘70대 특종’을 골라내 뉴스 이용자들에게 소개한다.

최고 권력자의 비리는 그의 가족에게서 생겨날 가능성이 크다. 김영삼(YS)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가 그랬고, 김대중(DJ) 대통령의 경우도 그랬다. 한국일보는 한국 민주화의 상징인 YS와 DJ 모두 대통령이 된 뒤, 자녀 단속에 실패해 게이트로 번진 상황을 특종 보도했다.

2002년 봄 불거진 이른바 최규선 게이트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3남 홍걸씨가 연루된 스캔들이다. 미래도시환경 대표였던 최씨가 홍걸씨 위세를 등에 업고 각종 이권에 개입, 금품을 받아 챙긴 사건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김대중 대통령의 두 아들(홍업·홍걸)이 구속됐고, 최씨는 징역 2년 6월의 실형을 살았다. 김 대통령은 그해 6월 22일 내놓은 대국민사과문을 통해 “제 평생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렇게 참담한 일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못 했다”면서 “모두가 저의 부족함과 불찰에서 비롯된 일로서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한국일보는 최규선 게이트가 불거지기 전부터 그의 측근의 제보를 받아 사실을 확인했다. 최규선 관련 보도의 경우, 2002년 4월 3일부터 9일까지 핵심 증인인 천호영씨의 신병을 확보해 독점 인터뷰 방식으로 사건의 실체를 독자들에게 알릴 수 있었다. 일부 언론도 비슷한 시점에 해당 사실을 보도하기는 했으나, 미디어 전문지들이 정리한 당시 상황은 한국일보의 보도가 가장 빨랐다는 게 확인된다.

최씨는 전남 나주 출신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집권하는 데 큰 도움을 줬고 한때 김 전 대통령의 총애를 받았다. 또 김대중 정부 초기에는 막후 실세로도 활동했지만 이후 정권 내 반대파에 밀려나게 된다. 최씨는 미국 유학시절 구축한 인맥으로 김 전 대통령의 대외 활동에 도움을 줬는데, 1997년 당시 세계적 팝 가수 마이클 잭슨을 초청해 김 전 대통령을 만나게 한 것은 대표적 도움으로 꼽힌다.

최규선 게이트는 부패 스캔들이라는 점 이외에도 주목받았다. 한국일보 등의 지적으로 수사에 나선 검찰이 그를 소환했을 때 최씨가 들고나온 책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였는데 이 책은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가 추진한 신자유주의의 이론적 토대가 되는 책이었다.

※연재 일정상 70개 특종 가운데 50개를 선별 게재하기 때문에, 일부(예: <41>이용호 게이트·2002) 특종은 소개되지 않습니다. 독자님들의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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