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이 낳고 한국이 기른다.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 2급인 독수리 얘기다. 겨울을 나기 위해 몽골에서 3,000㎞를 날아오는 새끼 독수리들을 보호하기 위해 20년 이상 힘써온 이들이 있다. 김덕성(72) 자연의벗 연구소 부설 독수리자연학교 대표와 노영대(72)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임완호 감독의 개봉 예정 다큐멘터리 영화 '독수리로드'의 두 주인공이기도 하다. 영화 개봉을 기념해 김 대표는 경남 고성군에서 화상회의 프로그램 줌(ZOOM)으로, 노 감독은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5일 함께 인터뷰했다.
김 대표와 노 감독이 독수리 보호에 관심을 갖게 된 시기와 계기는 비슷하다. 김 대표는 "1995년 경남 고성군 칠성고 미술교사로 재직 당시 논에서 농약을 먹고 고통스러워하던 독수리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이후 고성군에 '독수리 식당'을 차리고 지금까지 먹이를 주며 보호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경향신문과 문화일보 기자 출신인 노 감독 역시 90년대 말 취재 도중 임진강 얼음판에서 떼죽음 당한 독수리들을 보고 충격을 받은 게 계기가 됐다. "독수리들이 한국에 왜 오는지, 이후 어디로 가는지 궁금증이 생겼다"는 그는 몽골과 한국을 오가며 독수리 다큐멘터리 제작 및 독수리 연구에 몰두해왔다.
몽골에서 태어난 새끼 독수리들은 10~11월 몽골을 떠나 월동을 위해 한국을 찾고, 이듬해 2~4월다시 몽골로 돌아간다. 몽골에는 약 2만 마리가 서식하는데 이 중 한국을 찾는 독수리는 1,500~2,000마리다.
노 감독은 우리가 독수리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게 너무나 많다고 꼬집었다. 그는 "독수리의 '독'(禿)은 '대머리'라는 뜻으로, 대머리수리는 사냥 능력이 부족해 직접 사냥은 못 하고 동물 사체를 먹는다”며 "미국 국조인 흰머리수리 등 스스로 사냥하는 이글(Eagle)이 아닌 벌처(Vulture)인데 우리는 통칭해서 부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죽은 사체의 내장을 파먹기 위해 진화해 머릿털이 거의 없는 독수리들은 '야생의 청소부'로 불리며 생태계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현실에선 몽골과 한국에서 모두 위협받고 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몽골에선 토지 황폐화로 서식지마저 줄고 있다. 힘들게 날아온 한국에선 고의로 뿌려놓은 농약볍씨로 떼죽음을 당한다. 김 대표는 "농약에 중독된 사체를 먹어 2차 피해가 발생하는 데다 고압선에 충돌, 감전사하기도 한다"며 "질병, 배고픔, 탈진 등으로 죽는 경우도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보다 못한 김 대표는 고성군을 시작으로 독수리 식당을 차려 먹이를 공급하고, 다친 개체를 구조해 치료, 방사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한 곳에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거제, 통영, 김해 화포천 습지 등으로 '분점'도 냈다. 지금까지 그가 구조한 독수리는 250마리, 이 가운데 180마리를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냈다. 노 감독은 독수리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관련 다큐멘터리 제작에 이어 몽골과 한국에서 독수리에 윙태그(인식표)와 위치추적장치(GPS)를 달아 이동경로를 추적하는 한편 아프리카돼지열병(ASF)과 독수리 월동영역의 상관관계도 연구 중이다.
이들은 독수리 보호를 위해 필요한 정책으로 교육과 연구를 꼽았다. 이들은 "독수리 보호를 위해서는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중요하다"며 "특히 아이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어 "우리는 아직 독수리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다"며 "독수리 특성뿐 아니라 먹이 종류와 제공 방법 등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