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불안·엔화 깜짝 반등에... 5대 은행 외화예금 잔액 '출렁'

입력
2024.08.06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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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예금 한 달 새 8% 증가
고환율에도 안전자산 선호 ↑
엔화 예금은 7개월 만 감소

고환율에도 안전자산 수요가 몰리면서 지난달 주요 시중은행의 미국 달러화 예금 잔액이 껑충 뛴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들어 지속적으로 증가했던 일본 엔화 예금은 처음 감소로 돌아섰다.

6일 각 은행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지난달 말 기준 달러 예금 잔액은 약 576억6,500만 달러로 집계됐다. 한 달 전인 6월 말(534억6,407만 달러)보다 42억92만 달러가량(7.9%) 늘어난 것이다. 이들 은행의 달러 예금 잔액은 달러 가치 상승에 따른 환차익 실현 움직임과 국내 기업의 해외 배당 등 영향으로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5월까지 6개월 내리 줄었다. 하지만 6월 말 소폭(136만 달러) 반등으로 돌아섰고, 지난달 증가 보폭을 키웠다.

달러화 강세는 7월에도 여전했다. 지난달 3일 원·달러 환율 종가(오후 3시 30분 기준)는 1,390.6원에 달했고 이후에도 대체로 1,380원대의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그럼에도 달러 예금 잔액이 크게 늘어난 건 안전자산 확보 차원으로 봐야 한다는 게 은행권 해석이다. 지난달 20일 이스라엘이 예멘 내 후티 반군 장악 지역을 전격 공습하고, 31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최고 정치지도자인 이스마일 하니예가 암살되는 등 고조된 중동 불안이 안전자산인 달러 선호를 키웠다.

미국발 ‘R(Recession·경기침체)의 공포’도 안전자산 수요를 강화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다만, 달러 가치에 상·하방 압력을 동시에 주고 있어 향후 뚜렷한 방향성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백석현 신한은행 연구원은 “경기침체 우려에 따른 미국 증시 매도 압력은 달러 약세 요인이고, 이에 따른 국내 증시 하락은 강세 요인”이라며 “안전자산 수요는 달러 상승 압력이지만 미국 금리 인하 기대는 하락 압력으로 작용하는 등 여러 가지 심리가 교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5대 은행의 엔화 예금 잔액은 7월 말 1조2,112억 엔으로 전월 말(1조2,929억 엔)과 비교해 817억 엔가량(6.3%) 줄었다. 달러 예금과 반대로 그간 꾸준히 늘다 지난해 12월 이후 7개월 만에 처음 감소 전환했다. 엔저를 발판으로 예금 보유를 늘려온 투자자들이 엔화 가치가 반등하자 수익 실현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하나은행이 최종 고시한 원·엔 재정환율은 지난달 26일 901.05원으로 900원 선을 돌파해 이달 5일 951.88원까지 치솟았다.

일본은행의 정책금리 인상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금리 인하 기대로 미국과 일본의 장기금리 격차가 좁혀지면서 지난달 초 161엔대던 엔·달러 환율은 이달 145엔까지 내려온 상태다. 전문가들은 올해 엔·달러 하단을 140엔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최규호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연내 미국 기준금리가 1.25%포인트 인하될 것이란 시장 전망은 과도하다”며 “연준의 금리 인하가 우려만큼 가파르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 반영되면 엔·달러 환율 추가 하락도 멈출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 상황에서 엔화 추격 매수 매력이 크지 않다는 얘기다.

강유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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