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에는 두 손을 꼭 잡고 있는 남성 두 명이 새겨진 청동 부조가 있다. 주인공은 콘라트 아데나워 독일 총리(1949~1963년 재임)와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1959~1969년 재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적이 된 양국을 화해로 이끈 주역들이다. 이들이 1963년 체결한 독·프 우호 조약(엘리제 조약)을 기리며 만든 기념비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두 국가 간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꿨다."
한국·일본 갈등을 논할 때 전후 독일의 외교 정책은 모범 사례로 자주 등장한다. 나치 독일(1933~1945)이 유대인을 포함해 1,100만 명을 살해하는 등 온갖 만행을 저질렀으나 전후 진정한 사과를 토대로 프랑스, 폴란드 등 피해 국가와 빠르게 관계를 개선했기 때문이다. 반성이 전제돼 있기는 하지만, 한일 양국에 적용해봄 직한 관계 개선 노력도 적지는 않다. 정부·시민 간 만남을 정례화하고 제도화한 것, 안보 공통 관심사를 찾아 협력한 것 등이 대표적으로 거론된다.
독·프 관계를 적대 관계에서 우호 관계로 변화시킨 엘리제 조약은 당초 협정 형태로 체결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아데나워 총리와 드골 대통령은 양국 우호 약속이 정권에 따라 휘둘리지 않고 법적 구속력을 가질 수 있도록 조약으로 격상했다. 내부 정치적 상황에 따라 부침을 겪는 한일 관계와는 달리, 꾸준한 관계 개선이 가능했던 이유다.
조약에는 △국가 수반은 연 2회 회담 △외무·국방·교육 등 주요 장관은 연 3회 회담 등의 규정이 담겨 있다. 양국 정부가 주요 사안에 대해 지속적으로, 또 긴밀하게 협력하도록 강제한 것이다. 독일 싱크탱크 독일외교협회(DGAP)에서 독·프 관계를 연구하는 제이콥 로스 연구원은 "덕분에 두 당사자가 없어도 우호 관계가 계속 이어질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양국이 2019년 엘리제 조약을 갱신하며 관계를 한층 더 강화한 것도 중요한 장면"이라고 말했다.
조약이 특히 중요한 이유는 '시민 간 교류'를 제도화했다는 데 있다. 두 나라는 프랑스·독일 청년 사무소(프랑스 측 OFAJ·독일 측 DFJW)를 세운 뒤 양국 청소년이 언어 교환, 캠프 등 다양한 계기로 만날 수 있도록 했다. OFAJ를 통해 교류한 청소년은 지난해까지 950만 명에 이른다. 로스 연구원은 "학생 교류와 같은 시민 교류, 도시 간 협력 등은 (일본과) 물리적으로 가깝고 이동이 잦은 한국에서도 고려해봄 직하다"고 조언했다. 이러한 방식은 독일이 폴란드·이스라엘·체코 등과의 관계 개선에 나설 때도 비슷하게 활용됐다.
나치 독일로부터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던 폴란드는 1970년 '상호 관계 정상화 조약'을 통해 경제 협력을 중심으로 독일과의 관계를 개선했다. 총체적인 관계 발전 합의는 폴란드 민주화와 독일 통일, 소련 붕괴가 겹치면서 이뤄졌다. '좋은 이웃과 우호 협력에 관한 조약'(1991년)이 그것으로, 여기에는 청소년 교류 프로그램, 정상 간 만남 정례화 등 내용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양국 관계는 좋아지는 듯하다 다시 데면데면해지기를 반복했다. 나치 독일이 입힌 피해에 대한 보상금 등을 둘러싼 갈등을 겪은 탓이다.
그럼에도 양국은 완전히 서로에 대해 등을 돌리진 않았다. 독일·폴란드·프랑스의 느슨한 안보 동맹, 이른바 '바이마르 삼각동맹'이 상당한 기여를 했다. '공통의 관심사'인 안보를 매개로 삼아 장기적 협력을 할 수밖에 없는 이 동맹에 대해 프랑스 정부는 "독일·폴란드 화해를 지원하는 주요 틀"이라고 평가했다. 이는 한일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독일 싱크탱크 국제안보문제연구소(SWP)의 아시아 부연구그룹장 알렉산드라 사카키는 "전 세계적인 안보 위협이나 불확실성뿐 아니라, (한반도에선) 북한의 위협이 더 커졌다"며 "한일 화해 무드 조성에 적합한 환경이 조성된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가해국의 사과 여부, 당사국의 관계 개선 의지 등에서 차이가 나는 만큼 다른 나라의 성공 사례를 한일 관계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협력에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크다면 역사 문제에서 굽히지 않고도 서로의 손을 맞잡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사카키는 이런 조언을 건넸다. "선진국인 한일이 경제·기술 등에서 협력할 때 얻을 수 있는 시너지는 상당하다. 특히 아시아 의제를 선도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기후 위기 같은 거대 의제를 중심으로 아시아를 묶는 공동 역할을 수행해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