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發) 경기침체, 이른바 'R(recession)의 공포'가 글로벌 금융시장을 연쇄 패닉으로 몰아넣고 있다. 미국 경기가 침체 길목에 섰다는 우려에 5일 아시아 증시가 10%대 낙폭을 보인 한편, 미국 주가지수 선물도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세계 증시가 도미노처럼 추락했던 2020년 코로나 대폭락장을 연상케 하는 증시 발작에 투자자들은 서둘러 돈을 빼 안전자산으로 몰려가고 있다.
이날 아시아 증시에선 '블랙 먼데이'가 재연됐다. 일본 증시 대표 주가지수인 닛케이225 평균주가는 장중 15% 폭락했고, 한국 코스피·코스닥도 10%대 낙폭을 보이며 추락했다. 미국 주가지수 선물도 급락을 면치 못했다. 이날 오후 3시(한국시간) 기준 나스닥 100 선물은 6%대, S&P500 선물은 3%대 하락폭을 보이며 지난주 미국 증시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호주 IG오스트레일리아 시장 분석가 토니 시카모어는 "2020년 2, 3월 코로나발(發) 주가 대폭락 이후 이런 대학살의 날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미 블룸버그통신은 "투자자들이 보유 주식을 무자비하게 내던지고 있다"며 "증시가 자유낙하를 했다"고 이날 분위기를 전했다.
반대로 채권과 금 등 안전자산 가격은 치솟고 있다. 공포에 질린 투자자들의 수요가 몰린 데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경기침체에 맞서 올 하반기 공격적인 기준금리 인하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맞물린 결과다.
실제 채권 금리는 급락(채권 가격 상승)했다. 지난 5월만 해도 연 4.6%를 기록했던 미 10년물 국채 금리는 연 3.7%를 밑돌고 있다. 2년물 국채 금리 역시 연 3.7%대로 내려앉았다. 블룸버그는 "국채 금리가 글로벌 금융위기나 닷컴 붕괴 이후 연준의 기준금리에 비해 이처럼 낮은 수준까지 하락한 경우는 없었다"고 전했다. 연준은 지난달 31일(미국시간) 기준금리를 5.25~5.50%로 동결한 상태다.
국제 금값(선물 기준)은 이날 0.8% 상승한 온스당 2,488달러에 거래됐다. KCM 트레이드의 팀 워터러 수석 분석가는 "시장의 위험 회피 현상에 안전자산으로서의 금은 자본 흐름을 회복하고 있다"고 짚었다.
R의 공포가 확산하면서 현재로선 당분간 변동성이 큰 장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당장 '저가 매수'를 확신해 섣불리 시장에 뛰어들기보다는 관망이 더 나은 선택이 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날 스위스 최대 자산운용사 UBS자산운용은 현재 일본 증시에 투자하는 건 "떨어지는 칼날을 잡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경고를 내놨다. 인트레피드 캐피털의 포트폴리오 매니저 마크 트래비스는 "투자자들은 자신의 포지션이 적절한지, 위험이 무엇인지 재평가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