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에서 서로 얽혀 있는 한중일 삼국. 젊은 세대들이 역사를 올바르게 기억하려면 먼저 서로 이해하고 알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교류'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를 비롯한 한중일 시민단체들은 2002년부터 '동아시아 청소년 역사 체험 캠프'를 진행하고 있다. 100명 넘는 한중일 청소년들이 모여 5박 6일간 역사에 대해 토의하고 주요 역사 유적 등을 직접 찾는다. 처음에는 한일 양국으로 시작했으나 2004년부터 중국 청소년도 참가하고 있다. 매년 한중일이 돌아가며 캠프를 개최하는데, 올해는 일본 교토에서 이뤄진다. 고등학교 3학년 때인 2018년 중국 창춘에서 열린 캠프에 참가했던 A씨는 "일본인 친구가 '일본에 대한 증오가 생기지 않냐'고 물어 선조의 감정과 아픔, 증오를 지고 가는 우리의 힘듦을 비롯해 앞으로 일본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짊어지게 될 죄의 무게에 대해 얘기했다"고 말했다. 이어 "속마음을 털어놨을 뿐인데 마음가짐이 많이 달라졌고, 일본인 친구는 조용히 듣고 있다 나를 안아줬다"고 떠올렸다.
한중일 삼국의 시민사회와 학계가 공동으로 역사 교재를 편찬하는 것도 기억과 화해로 나아가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실제 2005년 '미래를 여는 역사' 1권이 처음 출판된 데 이어 2012년엔 전문가용인 2권이 나왔다. 올해는 더 쉽게 풀어쓴 3권 출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신철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위원장은 "1권 출판 당시 교육부가 구매해 전국 도서관에 배포하고 선생님들이 부교재로 쓰기도 했다. 일본에서도 10만 부 이상 팔렸다"고 전했다. 이어 "일본에서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서술한 마나비샤 출판사 교과서가 나오는 데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학계의 연구자가 양국 입장에서 역사를 바라본 사례도 있다. 도쿄대와 서울대 등에서 한국 근대사를 공부한 모리 마유코 도쿄여대 교수는 올 3월 '한국 병합 논쟁을 넘어, 다시 살핀 대한제국의 궤적'이라는 대중 역사서를 출간했다. 한일 양국의 사료를 풍부히 반영해 한국 병합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와 오늘날 징용, 위안부 문제에 대한 상반된 인식 등을 다뤘다. 저자가 책을 통해 강조하고 싶은 부분 중 하나는 일본인이 가진 역사 지식이 한국인과 같지 않다는 점이다. 한국병합에 따르면 한국 교과서는 제2차 한일 협약을 '을사늑약(강제로 체결된 조약)'이라고 칭하며 고종의 재가 없이 군대를 앞세워 강압적으로 체결한 것을 강조하고 있는 반면 일본 교과서는 대륙 진출 거점을 확보하기 위해 협정을 통해 외교권을 빼앗고 통감부를 설치했다는 표현으로 서술한다. 한국 교과서에 나온 병합 및 식민지 시대는 140쪽가량이지만 일본은 2쪽뿐이다. 모리 마유코 교수는 "'왜 한국은 식민지가 됐나'라는 문제에 대해 알려고 할 때 역사학적 방법으로 일반 독자를 위해 쓴 책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며 "이 책이 양국 역사 인식의 차이를 아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밝혔다.
물론 양국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도 필요하다.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복원이 첫 번째 열쇠다. 위원회는 역사문제에 대한 공동연구가 필요하다고 양국이 공감해 2001년 10월 한일정상회담에서 만들어져 2007년 2기까지 활동했으나, 2008년 이명박 대통령 취임 후 한일 관계가 급속도로 나빠지며 명맥이 끊겼다. 이처럼 정권 교체마다 한일 과거사 갈등의 수위가 널을 뛰는 것도 문제다. 전문가들은 진보 정권이든 보수 정권이든 '피해자 구제'라는 본질은 양보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이 위원장은 "일본의 식민 지배를 우리의 특수한 문제로만 가둬둘 필요가 없다"며 "인권과 평화의 보편적 가치를 위배한 가해국에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방향으로 설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가타 요시히로 후쿠오카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교수는 "진보와 보수가 서로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하기보다 피해자 구제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에 기반을 두고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