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의 안보협력은 한일관계의 마지막 퍼즐로 꼽힌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도쿄에 다녀왔는데, 한국 국방수장이 일본을 찾은 건 2009년 이후 15년 만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이미 수차례 상대국을 오간 것과 대비된다.
하지만 일본과 손잡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불을 지폈다. 일본과 등을 돌리면 한미일 안보협력은 공염불이 된다. 여기에 북한의 잇단 도발이 기름을 부었다. 한반도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라도 일본과의 군사 파트너십은 필수적이다.
다만 일본 함정이 우리 해군과 연합훈련을 할 때마다 '욱일기' 논란이 불거질 정도로 정서적 거부감이 여전하다. 정치권 일부에서는 '죽창가'를 부르며 일본을 정쟁의 소재로 악용한다. 한일 군 당국이 실시간으로 미사일 정보를 공유하고 있지만, 다음 단계인 군수지원으로 넘어가기엔 국내 여론을 설득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심지어 '초계기 레이더 사건'을 둘러싼 갈등은 해결이 아닌 봉합으로 가는 데만 6년이 걸렸다.
한국과 일본은 왜 군사적으로 서로가 필요할까. 전문가들은 북한과 러시아가 밀착하면서 가중된 안보위협을 우선적으로 지적한다. 북한의 도발에 효과적으로 맞서기 위해서는 이웃국가인 일본을 거점으로 신속한 지원과 협조가 중요하다. 특히 유엔사 후방기지(주일미군 기지)는 유사시 한반도에 증원전력을 투입하는 거점 역할을 한다.
평시 대비태세도 마찬가지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잦았던 올해 양국은 한층 결속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사실상 용도폐기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이 지난해 정상화됐고, 북한이 14차례에 걸쳐 40발이 넘는 미사일을 쏘는 동안 발사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호흡을 맞췄다.
김주형 안보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7일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가 미일 미사일방어(MD)체계에는 편입되지 않았지만, 정보 공유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응 능력을 높일 수 있는 효과적 수단"이라고 평가했다. 한국 율곡이이함, 미국 벤폴드함, 일본 아타고함 등 3국의 이지스함은 올해 탄도미사일 요격 절차를 숙달하는 미사일방어훈련을 네 차례 실시했다.
신원식 장관은 지난달 기하라 미노루 일본 방위장관과 회담에서 ①한일 국방장관 상호 방문 활성화 ②우리 군과 일본 자위대의 정례협의체 및 부대교류 ③한일 수색구조훈련(SAREX) 재개에 합의했다. 군 관계자는 "일본이 오랜 시간 축적한 해상과 상공에서의 방어·탐지 능력을 (우리가) 함께 활용할 수 있다면 우리의 안보 경쟁력 또한 자연스럽게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도 한국과의 군사협력이 필요한 건 마찬가지다. 일본을 타격할 수 있는 북한의 미사일은 수두룩하다. 한국이 뒷짐을 지면 일본의 초기대응은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이에 더해 중국은 일본을 겨냥한 치명적 위협이다. 대만과 동중국해·남중국해 문제에 대해 야욕을 숨기지 않고 있다. 미국을 고리로 한국과 협력해야 일본도 방어망을 온전히 구축하고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구조다.
관건은 갈수록 강화되는 한일 안보협력을 국민 감정과 여론이 받아들일 수 있느냐에 달렸다. 사회적 합의를 무시한 '속도전'은 역풍을 입을 수밖에 없다. 2012년 서명 2시간 전에 무산된 한일 지소미아 파동이 대표적이다. 이후 2016년 지소미아에 다시 서명하기까지 상당한 곤욕을 치렀다.
정부 안팎에서는 한일관계에 순풍이 부는 여세를 몰아 상호군수지원협정(ACSA) 체결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ACSA는 유사시 군수 분야에서 탄약, 식량, 연료 등을 주고받도록 규정한 것으로 지소미아와 함께 한일 군사협력의 양대 축으로 꼽힌다.
하지만 아직 감안해야 할 변수가 많다. 일본 자위대의 활동 공간을 우리 스스로 내주는 것 아니냐는 지적과 함께 한국의 국익에 과연 도움이 되는 것인지에 대한 회의론이 무성하다. 이에 군 당국은 "현시점에서 ACSA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라고 발을 빼며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권태환 국방외교협회장은 "한일 간 안보 협력의 필요성이 커지는 건 부인하기 어렵다"면서 "다만, 정부가 이를 국민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알리고 공감대를 형성하며 설득해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