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개월 사이 金 6개 '임시현 시대' 활짝... "열심히 준비했는데 빨리 끝나면 아쉽잖아요"

입력
2024.08.04 15:56
결승 '집안싸움'서 남수현 꺾고 3관왕



지난해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이어 2024 파리 올림픽에서도 3관왕을 차지한 한국 여자 양궁 간판 임시현(한국체대) 시대가 활짝 열렸다. 9개월 사이 열린 주요 국제 대회에서 6개의 금메달을 휩쓴 임시현은 ‘집안싸움’이 된 여자 단식 결승에서 “둘 다 메달인데 재미있게 경기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대회 마지막까지 승부를 즐긴 ‘강심장 궁사’의 면모를 보였다.

임시현은 3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레쟁발리드에서 열린 여자 양궁 개인전 결승 대표팀 막내 대결에서 남수현(순천시청)을 7-3(29-29 29-26 30-27 29-30 28-26)으로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로써 임시현은 여자 단체전 10연패, 김우진(청주시청)과의 혼성 2연패에 이어 개인전 우승까지 해내면서 대회 3관왕을 달성했다. 올림픽 양궁 3관왕은 3년 전 열린 도쿄 대회 안산(광주은행)에 이은 두 번째다.

이는 성인 국가대표에 발탁된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 벌어진 사건이다. 지난해 9월 태극마크를 달고 첫 출전한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개인-단체-혼성전을 싹쓸이하며 3관왕에 오른 임시현은 이번 대회에서도 랭킹라운드에서 694점을 기록, 강채영의 기존 기록(692점)을 2점 앞선 세계신기록을 작성하기도 했다. 아시아에서도, 세계 무대에서도 할 수 있는 건 다 해낸 셈이다. 올림픽 조직위는 이날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레쟁발리드를 배경으로 활시위를 당기는 임시현의 모습을 동상으로 만든 그래픽을 게시했다. 그만큼 위대한 업적이었다는 얘기다.

임시현은 시상대에 오를 때 엄지와 검지를 붙여 동그라미를 만든 뒤 눈에 갖다 대는 세리머니를 했다. 나머지 손가락 3개가 자연스레 펴져 3관왕 의미를 담은 듯했으나 진짜 의미는 '바늘구멍'이었다. 그는 "누가 (나에게) 항저우에서 3관왕을 했는데, 바로 다음 대회에서 또 3관왕을 하는 게 쉬울 것 같냐고 했다"며 "그래서 (그 어려운) '바늘구멍을 통과했다'는 의미로 세리머니를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승부처에서 집중력이 오르는 건 열심히 준비했는데 빨리 끝나면 아쉬워서 더 악착같이 쏜 것 같다"고 말했다.

결승 상대였던 양궁 여자대표팀 막내 남수현과는 결승에 들어가기 전에 '즐겁게 해보자'며 주먹을 부딪쳤다고 한다. 임시현은 "오히려 준결승 결승에서 둘 다 한국 선수들을 만나 과정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며 "4강이니까 둘 중 한 명은 무조건 결승에 가는 거니, 영광이라고 생각했다. (남)수현이랑 결승에서 만났을 때도 '어차피 우리 둘 다 메달인데 좀 더 재밌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은메달에 머문 남수현도 활짝 웃었다. 남수현은 "시현 언니와 같이 결승전을 해서 정말 영광이었다"며 후련한 마음을 내비쳤다. 결승전을 마친 뒤엔 양창훈 대표팀 감독의 다독거림에 울음이 터진 이유를 묻자 그는 "(눈물을) 참고 있었는데 양창훈 감독님께서 '너무 고생했다, 자랑스럽다'고 해주신 한마디에 터졌다"며 멋쩍어했다.

김형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