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혁명수비대(IRGC)가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정치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 암살 사건에 대해 '단거리 발사체 공격으로 살해됐다'는 자체 조사 결과를 3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이란 테헤란의 하니예 거처에 미리 설치돼 있던 폭탄이 터진 것"이라는 미국·영국 언론 보도를 정면 반박하는 설명을 내놓은 것이다. 이란의 '외부 공격설' 주장은 귀빈 피살로 이미 보안상 결함이 드러난 상황이긴 해도, 한층 더 심각한 불신과 책임론에 휩싸이는 것만큼은 방지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란 국영 IRNA통신에 따르면 IRGC는 이날 "(하니예에 대한) 테러는 약 7㎏의 탄두를 실은 단거리 발사체가 외부에서 날아오며 이뤄졌다"고 밝혔다. 하니예 암살 방법에 대한 이란 정부의 공식 입장 발표는 지난달 31일 이 사건이 벌어진 지 사흘 만이다. IRGC는 "시온주의자 정권(이스라엘)이 설계·실행했고, 범죄 정부인 미국이 지원했다"며 "(이란은) 적절한 시기·장소·방식으로 엄격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IRGC의 주장은 미국 뉴욕타임스(NYT) 보도 등을 계기로 '내부 폭탄 설치설'에 힘이 실리던 상황에서 나왔다. 지난 1일 NYT는 "2개월 전 하니예가 머물 가능성이 있는 귀빈 숙소에 폭탄이 설치됐고, 이 폭탄은 하니예 입실 확인 후 원격 조정으로 폭발했다"고 전했다. 다음 날 영국 텔레그래프는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이란 보안 요원 두 명을 포섭해 건물에 폭발물을 설치했다"고 보도했다. 당초 모사드는 지난 5월 헬기 추락 사고로 숨진 에브라힘 라이시 전 이란 대통령 장례식 때 하니예를 암살하려 했으나 실패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고, 이 계획을 마수드 페제시키안 신임 대통령 취임식(지난달 30일)으로 미루며 하니예가 머물 것으로 예상되는 3개의 방에 폭발물을 설치했다는 게 텔레그래프의 설명이었다.
이란 당국 발표와 외신 보도가 엇갈리면서 당분간 하니예 암살 경위는 미스터리로 남을 공산이 커졌다. 암살 배후로 지목된 이스라엘이 '함구 모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란은 이를 감안해 자국 명예를 그나마 덜 훼손시키는 설명(외부 공격설)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란 방공망이 허술해 단거리 발사체 공격을 막지 못했다'는 쪽이 '모사드의 오랜 암살 계획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보다는 덜 굴욕적이라고 판단했을 법하다는 얘기다.
특히 IRGC로선 하니예가 살해된 건물의 관할 기관이기도 해 어떻게든 '폭탄 설치설'을 차단해야 하는 상황이다. IRGC 관계자는 "(우리의) 보안 실패 탓에 일어난 암살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별도의) 실무팀이 구성됐다"고 밝혔다.
대외적으로는 이스라엘에 책임을 떠넘겼지만, 이란 내부는 '보안 허점'을 야기한 인사를 색출하느라 초비상이 걸렸다. NYT에 따르면 이란 당국은 정보 및 군 관계자, 하니예가 머물던 숙소 직원 등 20여 명을 체포했다. 모사드가 포섭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란 보안 요원들에 대한 수색 작전에도 돌입했다. 보안 실패를 둘러싼 '네 탓 공방'도 한창이라고 텔레그래프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