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리지 않는 삶의 난제들과 맞서기도 해야겠지만, 가끔은 달아나는 것도 필요하다." 김영하 작가가 말하는 '여행의 이유'다. 산으로 바다로 떠나지 않고도 때로는 책을 읽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공주로, 잔잔하게, 책방실격, 책방 여행마을, 책크인(가나다순) 등 여행책 전문 책방 5곳의 여행 책 추천사를 싣는다. 책방마다 두 권씩을 골랐다. 책만 펴면 지금 당장 떠날 수 있는데, 읽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여행과 가장 잘 어울리는 건 뜨겁지만 서정적인 여름, 청량하고 폭발력 있는 맥주, 센티하지만 낭만적인 영화다. '여름 맥주 영화'에는 이 세 가지를 모두 좋아하는 저자 유성관이 6월의 강원 고성과 12월의 경기 파주를 지나가며 느낀 감정이 담겨 있다. "애매한 시간에 혼자 펍에 출몰하는 법"을 알고 있는 '맥주 덕후'의 조금은 뾰족한 취향을 보여주는 에세이다. 계절을 살피는 그의 문장들을 읽다 보면 저절로 여행을 사랑하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저절로 술이 당기는 마법 역시 경험할 수 있다.
시티팝, 인도 라가, 샹송처럼 리듬과 멜로디를 들으면 특정 도시가 떠오르는 음악이 있다. 블루스를 들으면 재즈의 고향이자 루이 암스트롱의 도시인 미국 루이지애나주의 뉴올리언스가 그리워진다. 여행 고수인 이인규·홍윤이는 한국인에게는 낯선 여행지 '뉴올리언스에 가기로 했다.' 뉴올리언스의 역사 깊은 재즈클럽부터 소울이 담긴 음식집, 묘지 투어 등의 이야기가 담긴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재즈에 몸을 맡긴 내 모습을 만나게 될 것이다.
매일 여행책을 마주하다 보니, 언젠가는 나만의 여행책을 쓰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마스다 미리의 '세계 방방곡곡 여행 일기'와 오카오 미요코의 'Land Land Land'는 꼭 이렇게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이다.
'세계 방방곡곡 여행 일기'는 마스다 미리의 '생각하고 싶어서 떠난 핀란드 여행'을 읽고 나서 그의 팬이 된 후에 봤다. 이탈리아, 싱가포르, 대만, 한국 등을 여행하면서 겪은 에피소드를 유쾌하고 진솔하게 풀어낸 책. 언제, 어디서든 틈틈이 읽기 좋다. 타이베이 여행 중 이 책을 읽었는데, 책 속 에피소드와 내 경험이 겹쳐지며 더 깊은 공감과 흥미를 갖게 됐다.
'Land Land Land'는 독특한 여행 에세이다. 저자가 폴라로이드 사진과 함께 자신의 여행 경험과 여행에 관한 생각을 A부터 Z까지 단어로 재치 있게 엮어냈다. 이를테면 'Icecream'으로 "여행의 시작은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이란 여행의 스위치"라고 하는 식. 공항 게이트 대기실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게 습관이 됐기 때문이다. 책 곳곳에 패션에서 잡화까지 폭넓은 분야에서 활동하는 인기 스타일리스트인 작가의 감각과 감성이 묻어난다.
'무정형의 삶'은 20년 경력의 카피라이터 김민철이 퇴사 후 프랑스 파리로 떠나 두 달간 머무르며 쓴 책이다. 그가 "22년째 한 번도 변한 적 없는 사랑"의 대상 파리로 훌쩍 떠났던 것처럼 나 역시 퇴사하고 '로망'을 실현하기 위해 파키스탄에 갔다. 직장인에게 '무정형의 삶'은 모호할 테지만 프리랜서가 되어보니 그건 또 하나의 '정형의 삶'이었다. 책을 읽으며 대리만족할 수 있었다. 친구와의 동반자적 내용도 눈에 띈다. 작가의 전작을 거의 다 읽었는데 이 책으로 정점을 찍었다.
'여행하는 소설'은 소설가 장류진, 윤고은, 기준영, 김금희, 이장욱, 김애란, 천선란이 여행을 테마로 쓴 단편소설 7편을 엮은 책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일 때 출간돼 떠나지 못하고 머무는 이들을 위로했다. 지금은 누구나 여행을 떠나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 새롭게 읽힐 수 있는 책이다. 작품마다 각자의 시선에서 여행을 매개로 인간과 세계를 그려냈다. 여행지에서도 틈날 때마다 한 편씩 잘라 읽기 좋다. 읽고 나면 여러 문장들이 남는다. 책방에 떨어지면 꼭 다시 가져다놓는 책이다.
'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은 시인 문보영이 지난해 3개월간 '아이오와 글쓰기 프로그램(IWP)'에 참여한 경험을 담은 에세이다. 짧은 글들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미국 아이오와주라는 장소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저자가 IWP 프로그램에서 만난 30여 개국 작가들과 보내는 평범한 일상 속 에피소드는 쿡쿡 웃게 했다가 찌르르 마음 한구석을 저리게 하기도 한다. 여행이란 멀리 떠나 다른 세상을 탐닉하는 데 애를 쓰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이오와의 낡고 추운 호텔에 머무르며 저마다의 세상을 지고 온 사람들을 만나는 것 또한 여행이 될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읽었다. 다 읽고 나면 여전히 미국 어디쯤 자리하고 있는지 모르겠는 아이오와가 그리워진다.
'파리에서 만난 말들'은 20년 차 파리지앵 목수정의 에세이다. 그는 "말은 각각의 공동체가 경험과 성찰을 통해 빚어낸 열매"라며 프랑스적 삶의 태도가 묻어나는 34개의 말을 엄선해 그 말에 깃든 진짜 의미를 들려준다. '아기의 머리를 매만지는 손길 같은'이라는 프랑스어 단어 'Doucement'부터 마녀를 의미하는 'Sorciere'까지, 저자가 단어의 진의를 깨닫는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자신이 선택한 고독을 만끽하는 것이 여행하는 이방인의 특권이라지만 의사소통의 막막함은 어쩔 수 없이 외로운 순간을 맞이하게 한다. 그런 순간 위로가 될 만한 책이다.
"생뚱맞게 무주로 향한 건 오로지 무주산골영화제 때문이었다." 이렇게 시작하는 책 '달리 말할 수 없이 무주'는 저자 느린테가 2019년 전주 무주산골영화제로 우연히 무주를 만나면서 시작되는 '무주 일기'다. "영화가 이정표가 되어주겠거니" 별스럽지 않게 내딘 첫걸음이 예상치 못한 길로 흘러 무주가 아니면 안 되는 다섯 해의 이야기로 쌓였다. 책은 정겹고 그리운 단어들로 가득하다. 읽는 것만으로도 무주를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일상과 여행 사이에서 소소한 모험과 낭만을 발견하는 시간이 될 거다. 나만의 '무주'를 발견해 보는 건 어떨까.
부제는 '더위 못 참는 아빠, 영어울렁증 엄마, 노는 게 제일 좋은 8살 딸의 태국 32박 33일 여행일기'. 3인 가족의 태국 한달살이 기록인 '한달생활비로 무작정 떠난 태국한달여행 일기'는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여행 에세이다. 날짜순 일기장 형식으로 구성돼 각자의 시점이 담긴 여행을 볼 수 있다. 특히 아이의 그림일기는 스캔본이 그대로 담겨 있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동심으로 돌아가 태국 여행을 즐길 수 있게 돕는다. 매일의 경비 사용 내역은 물론 총경비가 정리돼 있어 여행 계획과 예산을 세울 때도 참고하기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