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 나달'... '흙신', 롤랑가로스 코트와 아쉬운 이별

입력
2024.08.01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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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차례 우승한 프랑스오픈 경기장에서
복식 8강전 패배로 올림픽 여정 마무리
은퇴 시사로 사실상 롤랑가로스 마지막 경기
"이번이 마지막이라면, 나는 충분히 즐겼다"



2005년 6월 5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스타드 롤랑가로스에 설치된 프랑스오픈 테니스대회 시상대에 19세의 앳된 청년이 올라섰다. 프랑스의 축구 영웅 지네딘 지단이 청년에게 은색 우승컵을 건넸다. 청년은 이를 두 손으로 번쩍 들어올린 후 한쪽에 조심스레 입을 맞췄다. 라파엘 나달(스페인)의 프랑스오픈 첫 우승 트로피였다.

그로부터 약 20년이 흐른 지난달 26일 그는 파리 트로카데로광장에서 다시 지단 앞에 섰다. 이번엔 트로피 대신 2024 파리 올림픽 성화를 건네받았다. 첫 메이저대회 우승컵을 받아들 때와 비교해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얼굴에 주름이 생겼고, 단발을 흩날릴 정도로 풍성했던 머리숱도 듬성듬성해졌다.

외견보다 더욱 크게 변한 건 그의 위상이었다. 20년 사이 그는 메이저대회에서만 22회 우승을 거둔 테니스계의 전설로 성장했다. 그중에서도 이번 올림픽 테니스 종목 경기장이자 프랑스오픈 대회장인 롤랑가로스에서만 14차례나 정상에 섰다. 흙으로 이뤄진 이 코트에서 그는 통산 전적 112승 4패(승률 96.5%)를 거두며 ‘흙신’으로 등극했다.

그러나 흙신도 흐르는 세월을 거스르지는 못했다. 나달은 지난달 29일 자신의 홈코트와 다름없는 롤랑가로스에서 열린 파리 올림픽 남자 단식 2회전에서 ‘세기의 라이벌’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에게 세트스코어 0-2(1-6 4-6)로 완패했다. 지난해부터 나달을 괴롭혀온 각종 부상(허리·고관절·다리)에서 온전히 회복하지 못한 듯했다.

그래도 아직 희망은 남아 있었다. 그는 스페인의 신성 카를로스 알카라스와 함께 이번 대회 남자 복식에도 출전했다. 테니스 신구 황제가 합심한 스페인은 이번 대회 강력한 우승후보로 평가 받았다. 만약 나달이 복식 경기에서 우승한다면, 2008 베이징 올림픽 단식과 2016 리우데자네이루 대회 복식에 이어 세 번째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다.

하지만 나달-알카라스 조는 지난달 31일 열린 대회 8강전에서 ‘복병’ 오스틴 크라이첵-라지브 람(미국)조에 0-2(2-6 4-6)로 패했다. 1세트 첫 번째 게임부터 서브게임을 내주며 흔들렸다. 2-4로 끌려가던 7번째 게임에서도 서브 게임을 지키지 못하며 고개를 숙였다. 2세트에서도 3-3으로 팽팽하던 순간 서브 게임에서 패하며 흐름을 내줬고, 이어진 상대 서브 게임을 따내지 못하면서 4-6으로 패배했다.

만 38세인 나달은 경기 후 롤랑가로스로 돌지오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그는 “올림픽이 프랑스에서 치르는 마지막 경기가 맞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마도?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이어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지만, 만약 이번이 마지막이라면 나는 충분히 즐겼다”고 덧붙였다. 앞서 조코비치와의 단식 경기 후 “이 대회가 끝나면 내 감정과 열망에 따라 필요한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언급했던 만큼 그가 현역 생활 마무리를 준비하고 있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20년간 이어진 나달의 롤랑가로스 장기집권이 사실상 막을 내렸다.




박주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