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통화정책 변곡점 앞에 선 한국은행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물가 상승세 진정과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9월 금리 인하 시사로 긴축을 끝낼 여건이 다져졌지만, 서울을 중심으로 가파르게 상승 중인 부동산시장과 가계부채 걱정이 막판 발목을 잡는 상황이다.
서울 집값은 파죽지세다. 1일 한국부동산원의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7월 마지막 주(29일 기준) 서울 아파트값은 0.28% 오르며 19주 연속 상승했다. 직전 주간 5년 10개월여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0.3%)을 기록했는데, 이번 주도 못지않았다. 열기가 점점 주변 지역으로 번지면서 서울 강남과 맞닿은 경기 과천시(0.45%)도 강세를 보였다.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겠다는 움직임에 은행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잔액은 또 한 번 껑충 뛰었다. 지난달 말일 기준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주담대 잔액은 559조7,501억 원으로 한 달 사이 7조5,975억 원 불었다.
정부가 아직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한 데다, 금리인하 기대감으로 시장금리와 은행 대출금리가 연쇄적으로 하락해 주택 매수세를 부추기는 모습이다. 서진형 한국부동산경영학회 회장은 "서울 등 주요 지역 집값이 강세를 띠는 초양극화 현상이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 연준의 금리 인하 신호에 한은이 마냥 안도하지 못하는 것도 부동산과 가계부채 탓이 크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8번째 정책금리 동결을 결정한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직후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이르면 9월 금리 인하를 논의할 수 있다"며 정책 전환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했다. 이에 연방기금 금리선물 시장 기대를 반영하는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패드워치에서 9월 FOMC 금리 인하 확률이 100%로 오르는 등 미국의 9월 인하는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은도 금리 인하 '깜빡이'는 켜 놓은 상태다. 이창용 총재가 지난달 11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차선을 바꾸고 적절한 시기 방향 전환할 상황은 조성됐다"고 말한 게 단적인 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달 2.4%까지 낮아져 하반기 중 목표 수준(2%)에 근접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준 피봇(pivot·통화정책 전환) 기대에 따른 위험 선호 강화와 일본 중앙은행 금리 인상에 따른 엔화 강세로 원·달러 환율 1,400원 돌파 걱정도 덜게 됐다. 실제 1일 환율은 1,366.2원(오후 3시 30분 기준)으로 전일 대비 10.3원 하락했다.
남은 변수는 부동산이다. 기준금리 인하가 본격화하면 대출 수요와 집값을 더 자극할 가능성이 크고, 불어난 주거비 부담은 가계 소비를 제약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최근 공개된 7월 금통위 의사록에서도 금통위원 전원이 부동산시장 과열을 우려했다. 한 위원은 "물가 측면에서 통화정책 전환 위험은 상당폭 낮아졌지만, 주택가격 상승폭 확대에 따른 금융안정 측면의 위험은 증가했다"고 했다. 또 다른 위원은 "금리 인하가 경제의 구조조정 노력을 되돌리거나 일부 지역의 부동산 가격 상승을 촉발하는 계기가 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올해 남은 금통위는 8·10·11월 세 차례다. 증권가에선 금통위 분위기와 역대 최대인 한미 금리차를 고려할 때 미국보다 선제적으로 금리를 내리긴 어렵다고 본다. 연내 두 차례 인하도 어려울 것이란 의견이 많다. 안예하 키움증권 연구원은 "한은은 10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할 것"이라며 "집값 상승 추이를 지켜봐야 하기 때문에 더 큰 폭으로 내리거나 11월까지 연달아 인하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전망했다.
9월 시행되는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효과에도 일단 기대를 걸고 있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은행들이 주담대 금리를 높이고 있는 상황에서 스트레스 DSR이 확대 시행되면 대출 증가 속도가 완화해 10월엔 금리를 내리기 부담스러운 환경은 아닐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