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등에 올라탄 괴물을 함께 쫓던 작은형이 세상을 떠났을 때

입력
2024.08.02 11:00
11면
[책과 세상]
그래픽 노블 '지구인에게'

"형! 걱정 마! 이제는 우리 둘이야!"

아이는 아버지 등에 올라타 있는 외계 괴물을 발견한다. 아버지가 어머니와 외할머니에게 막말을 하는 이유가 괴물 때문이라고 아이는 생각한다. 괴물을 떼어 내려다 아버지를 공격하는 꼴이 된 아이는 풀이 죽지만 이내 작은형의 위로를 받는다. "너도 보고 말았구나. 너무 무서워하지 마라." 작은형도 괴물을 본다는 사실에 힘이 난 아이는 형과 함께 괴물을 없앨 방법을 궁리한다. 형제는 불과 새총을 써 보고, 밧줄을 던져 포획도 시도해 보지만 모두 실패한다.

작은형과 손을 잡고 걸으며 집으로 향하던 어느 날. 열차 승강장에 선 아버지와 큰형을 발견한다. 괴물에 사로잡힌 아버지와 큰형이 고개를 젖히고 두 눈을 희번덕거릴 때 멀리 열차가 들어오는 게 보인다. 작은형은 아버지와 큰형에게 소리치며 승강장으로 뛰어들다 변을 당한다.

그래픽 노블 '지구인에게'는 어린 시절 작은형을 떠나보낸 이루리 그림책 작가의 진혼곡이다. 작가가 초등학교 5학년 때 고등학교 1학년이던 작은형은 전철에 머리를 부딪히는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이 작가의 2017년 발표작인 이야기에 모지애 그림책 작가의 그림을 더해 재탄생했다.

유년기의 폭력 피해 경험을 공상과학(SF)적 시각으로 그리며 시작하는 책은 사랑을 이야기하며 끝난다. 아이는 작은형의 유품인 가족사진 앨범에 적힌 문구를 가족과 공유한다. "모두 사랑해요. 지킬게." 작은형의 진심 어린 사랑 고백에 아버지와 큰형은 왈칵 눈물을 쏟고, 두 사람을 꽉 붙들고 있던 외계 괴물은 종적을 감춘다. 흑백으로 묘사됐던 아버지와 큰형은 그제야 색채를 입으며 진짜 지구인이 된다.


김소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