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파리 올림픽에서 한국 양궁 여자 단체전 10연패, 남자 단체전 3연패의 대역사가 연출된 곳은 ‘군사박물관’으로 불리는 앵발리드(Invalides, 레쟁발리드)광장이다. 선수들이 활 시위를 당길 때 TV 화면 뒤로 잡히던 둥근 지붕이 바로 앵발리드 예배당의 황금 돔이다. 19세기 초 유럽을 정복하고 프랑스 제1제국을 수립한 나폴레옹 황제가 이곳에 잠들어 있다. 프랑스의 현충원인 셈이다.
□ 앵발리드는 베르사유 궁전을 지은 태양왕 루이14세가 전쟁에 나가 싸우다 다친 병사와 퇴역 군인들을 위해 세운 병원(hotel des Invalides)이다. 앵발리드엔 상이군인, 불구, 지체부자유란 뜻이 있다. 병원(hospital)인데 호텔이란 이름이 붙은 건 어원이 같기 때문이다. 1706년 바로크 양식의 본 건물이 준공된 데 이어 1710년 높이 107m의 교회도 완성됐다. 1789년 프랑스 혁명 당시엔 시민들이 바스티유 감옥으로 향하기 전 총기를 탈취한 곳이기도 하다. 프랑스인들의 자랑인 나폴레옹의 시신은 예배당 황금 돔 아래 적갈색의 웅장한 석관 아래 1861년 안치됐다. 1940년 아돌프 히틀러도 파리에 단 3시간 머물 때 이곳을 찾았다.
□ 프랑스 대표팀이 양궁 남자 단체 결승전에 올랐을 때 파리 관중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선수들이 감격한 건 이러한 앵발리드의 역사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 양궁팀의 승전보는 프랑스의 영광을 상징하는 장소에서 잇따르고 있어 더 큰 의미가 있다. 주몽의 후예들은 나폴레옹의 자손보다 한 수 위인 데다 준비까지 철저했다. 파리로 떠나기 전 충북 진천선수촌에 앵발리드 경기장을 그대로 재현한 뒤 적응 훈련까지 마친 것. 우리 대표팀이 나폴레옹 앞에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았던 이유다. 사실 프랑스가 양궁 사상 처음으로 결선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오선택 전 한국 대표팀 감독이 지도한 영향이 적잖다.
□ 단체·혼성전에 이어 김우진 김제덕 이우석 임시현 전훈영 남수현 등 한국 궁사들이 모두 개인 16강에 진출, 다시 앵발리드에서 금메달을 향해 쏜다. 앵발리드는 마라톤 결승 지점이기도 하다. 앵발리드 황금 돔 위로 휘날리는 태극기를 계속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