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궁 앵발리드 승전보

입력
2024.08.02 16:00
18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2024 파리 올림픽에서 한국 양궁 여자 단체전 10연패, 남자 단체전 3연패의 대역사가 연출된 곳은 ‘군사박물관’으로 불리는 앵발리드(Invalides, 레쟁발리드)광장이다. 선수들이 활 시위를 당길 때 TV 화면 뒤로 잡히던 둥근 지붕이 바로 앵발리드 예배당의 황금 돔이다. 19세기 초 유럽을 정복하고 프랑스 제1제국을 수립한 나폴레옹 황제가 이곳에 잠들어 있다. 프랑스의 현충원인 셈이다.

□ 앵발리드는 베르사유 궁전을 지은 태양왕 루이14세가 전쟁에 나가 싸우다 다친 병사와 퇴역 군인들을 위해 세운 병원(hotel des Invalides)이다. 앵발리드엔 상이군인, 불구, 지체부자유란 뜻이 있다. 병원(hospital)인데 호텔이란 이름이 붙은 건 어원이 같기 때문이다. 1706년 바로크 양식의 본 건물이 준공된 데 이어 1710년 높이 107m의 교회도 완성됐다. 1789년 프랑스 혁명 당시엔 시민들이 바스티유 감옥으로 향하기 전 총기를 탈취한 곳이기도 하다. 프랑스인들의 자랑인 나폴레옹의 시신은 예배당 황금 돔 아래 적갈색의 웅장한 석관 아래 1861년 안치됐다. 1940년 아돌프 히틀러도 파리에 단 3시간 머물 때 이곳을 찾았다.

□ 프랑스 대표팀이 양궁 남자 단체 결승전에 올랐을 때 파리 관중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선수들이 감격한 건 이러한 앵발리드의 역사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 양궁팀의 승전보는 프랑스의 영광을 상징하는 장소에서 잇따르고 있어 더 큰 의미가 있다. 주몽의 후예들은 나폴레옹의 자손보다 한 수 위인 데다 준비까지 철저했다. 파리로 떠나기 전 충북 진천선수촌에 앵발리드 경기장을 그대로 재현한 뒤 적응 훈련까지 마친 것. 우리 대표팀이 나폴레옹 앞에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았던 이유다. 사실 프랑스가 양궁 사상 처음으로 결선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오선택 전 한국 대표팀 감독이 지도한 영향이 적잖다.

□ 단체·혼성전에 이어 김우진 김제덕 이우석 임시현 전훈영 남수현 등 한국 궁사들이 모두 개인 16강에 진출, 다시 앵발리드에서 금메달을 향해 쏜다. 앵발리드는 마라톤 결승 지점이기도 하다. 앵발리드 황금 돔 위로 휘날리는 태극기를 계속 보고 싶다.

박일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