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고양이가 말했다 : ‘포항 고양이 킬러’들의 실체 [동물 과학수사 연구소 ①]

입력
2024.08.02 09:00
부검으로 돌아본 동물학대 사건

편집자주

동물학대 범죄에 대한 사회의 관심은 여느 때보다 높습니다. 그러나 2022년 경찰청,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검찰에 송치되는 사건은 55.7%에 그치고, 그나마 송치된다 하더라도 법정에 기소될 확률은 31.9%에 그칩니다. 불송치, 불기소 사유 대부분은 ‘증거 불충분’.

동물은 말을 할 수 없어서 피해를 구체적으로 증언할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학대당한 동물 상당수는 이미 숨을 거둔 뒤이기에, 증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과학수사’가 더 필요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동물 과학수사’는 이제 시작 단계입니다. 그래서 동그람이는 지금까지 동물 부검이 범행을 입증하는데 성공하고 또 실패한 사례를 탐색해 보기로 했습니다. 이를 통해 동물학대 수사에 무엇이 필요한지, 앞으로 어떻게 동물 부검 체계가 나아가야 할지 우리 사회가 고민할 기회가 되기 바랍니다.

*이 기획은 농림축산검역본부와 함께 합니다.

2022년 3월 20일.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보통 저녁식사를 마치고 잠시 한숨을 돌리고 있을 법한 저녁시간. 동물권행동 '카라' 최민경 활동가의 휴대전화가 연신 울렸다. 연락을 보낸 곳은 경북 포항시. 알람 소리가 이어지는 것을 보고 최 활동가는 심각한 상황임을 직감했다.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최 활동가는 당시 카카오톡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온라인 동물학대'를 추적하는 각 지역 동물보호 활동가들과 활발하게 소통 중이었다. 그중 포항 지역에서 고양이를 잔인하게 살해하는 사진과 영상을 SNS에 게시하던 학대범의 근거지를 찾아냈다는 연락이 온 것이었다.

연락을 받은 최 활동가는 즉시 카라 활동가들의 지원을 요청했다. 사건 상황을 전해 들은 다른 활동가들은 물론이고, 전진경 카라 대표도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활동가들과 서울에서 포항까지 이동해 현장을 살펴보기로 결정했다.


사건 내용도 심각했지만, 그보다 더 급한 사정이 있었어요. 이 학대범의 뒤를 쫓는 사설탐정이 경찰에 신고를 하는 바람에, 현장에 경찰이 출동을 해버렸어요. 그런데 경찰이 현장 보존도 안 하고 날이 밝으면 수사를 하겠다고 돌아가 버린 거예요. 증거인멸도 걱정되고, 무엇보다 현장에 있는 고양이들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이었거든요.
최민경, 동물권행동 '카라' 활동가

활동가들이 깊은 어둠을 헤치고 현장에 도착한 시각은 다음날 새벽 1시. 조명 하나도 없는 폐쇄된 양어장에서 자동차 헤드라이트에 의지해 마주한 현장 광경은 끔찍했다. 곳곳에 부위별로 해체된 고양이 사체가 발견됐고, 살아 있는 고양이들은 깊은 시멘트 바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고양이들이 갇혀 있는 폐양어장의 깊이는 약 3m. 사람도 사다리를 통해 오르내려야 할 정도로 아찔한 높이였다. 활동가들이 다리를 떨며 내려가 보니 형체도 제대로 알아보기 어려운 고양이 사체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카라 활동가들은 현장에서 사체를 수습한 뒤 경찰에 넘겼다. 경찰은 이 사체들과 범인 A씨의 집에서 발견된 사체들을 농림축산검역본부 질병진단과에 부검을 의뢰했다.


이런 유형의 고양이 사체는
이전에 부검해 본 적도 없었고, 그 이후에도 못 봤습니다.
이경현, 농림축산검역본부 수의연구관

부검 의뢰가 들어온 고양이 사체들을 처음 본 이경현 수의연구관은 이렇게 말했다. 단순히 조각난 사체들이 들어와서가 아니었다. 현장 외에도 A씨의 자택에서는 다수의 고양이 사체가 발견됐는데, 그중에는 태어나지도 않은, 태아 상태의 새끼 고양이 개체도 있었다. 이 고양이들은 에틸알코올 액체가 담긴 플라스틱 통에 담겨 있었다. 마치 표본을 만들기라도 한 듯했다.

경찰은 이 새끼 고양이들의 사인을 분석해 주기를 바랐다. 범인이 이 고양이들을 죽인 뒤 용액에 담근 것인지, 아니면 산 채로 용액에 담근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이유는 ‘양막’에 있다. 어미 뱃속에서 태아를 보호하는 양막은 태아가 태어난 뒤에는 벗겨져야 한다. 여기서 자가호흡이 한차례라도 된 뒤에야 용액에 의한 익사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연구관은 새끼 고양이의 양막이 벗겨지지 않은 것을 통해 한 가지는 확인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정상적으로 새끼 고양이가 태어났다면 양막은 어미가 핥으면서 찢어집니다. 그렇지 않았다는 건 범인이 새끼 고양이를 어미 뱃속에서 강제로 꺼냈다는 걸 의미합니다.
이경현, 농림축산검역본부 수의연구관

다른 고양이들의 사인도 확인할 수는 없었을까. 이 연구관은 “온전한 상태의 개체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사체의 상태는 분리되었거나, 건조, 부패가 상당 부분 진행된 상태였다. 심지어 이빨조차도 대부분 빠져 있어서 사체의 나이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 그는 “확보된 사체가 모두 몇 마리인지 확인하는 것조차도 힘들 만큼 훼손이 심했다”며 “분리된 개체의 모색, 크기, 해부학적 구조 등을 대조해가며 확인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확보된 사체를 통해 검역본부가 추정한 사체의 총 개체 수는 7마리였다.


A씨가 검거된 지 불과 3개월 뒤, 포항 시내에는 또 다른 고양이 살해범이 붙잡혔다. 심지어 이 범인은 과거 약 3년간 이 지역에서 연쇄 고양이 살해를 저지른 범인이었다. 그의 첫 범행 장소는 관내 대학교였던 한동대 캠퍼스. 당시 6m 높이 나무에 고양이 사체가 매달려 있었다. 범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은 고양이를 돌보는 교내 동아리를 향해 ‘고양이 먹이를 주지 말라’는 내용의 글귀를 붙여놓았다.

그리고 3년 뒤인 2022년 6월, 포항 시내 한 초등학교 인근에서 기시감이 드는 장면이 펼쳐진 것이다.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목에 매달린 채 발견된 것이다. 또한 범행 현장에서는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내용의 글귀가 붙어 있었다. 차이점이라면, 이 사건 글귀에는 포항시의 공문을 사칭하는 인장이 붙어 있었다는 점이었다.

다행히 현장에서는 범인이 남긴 꼬리가 있었다. 바로 주변에 주차된 차량의 블랙박스와 CCTV였다. 이를 바탕으로 추적을 이어간 경찰은 범인 B씨를 체포해 여죄 추궁에 들어갔다. 경찰은 과거 사건에서도 고양이 사체를 높은 곳에 매달아놓은 공통점에 착안해 B씨의 지문을 확보해 과거 사건 당시 지문과 대조했다. 경찰의 여죄 추궁에 결국 B씨는 과거 범행까지 모두 시인했다.


부검으로는 B씨 범행들의 공통점을 밝힐 수 없었을까. 아쉽게도 현실 속 범인들은 드라마 속 연쇄 살해범처럼 ‘시그니처’를 명확하게 남기지 않는다. 이 연구관은 “우선 범행 기간(3년)이 너무 길었다”며 “그 사이에 목을 매다는 범행도 있었지만, 둔기로 때린 것으로 추정되는 사체도 있었고, 익사시킨 사체도 있었다”고 B씨 범행으로 희생된 고양이들에 대해 설명했다. 동물 관련 범죄도 진화하는 만큼 최대한 빠른 검거가 필요하다는 걸 확인시켜준 사례였다.

고양이 여러 마리를 학살한 범죄자들의 최후는 법적 처벌이어야 한다. A씨와 B씨 모두, 범행의 잔혹성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다. 게다가 A씨는 추적한 지역 동물보호 활동가를 협박한 혐의를 받았고, B씨도 포항시 공문을 사칭하는 글귀를 게재한 혐의도 받았다. 누가 봐도 중벌을 피할 수 없는 범죄 혐의들.

그러나 A씨는 1심에서 징역 1년 4개월형을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 집행유예 2년 판결을 받고 석방됐다. B씨는 1,2심 모두 동일하게 징역 2년 6개월형이 내려졌다. 두 사람이 엇갈린 이유는 ‘형사 공탁금’. A씨가 협박 대상이었던 활동가의 동의 없이 공탁금을 기탁해 집행유예를 받아낸 것이다. 잔인한 학대 행위는 부검으로 입증됐지만, 끝 맛은 씁쓸하게 남은 사건이다.


정진욱 동그람이 에디터 8leonardo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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