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안녕하세요. 24시 센트럴 동물메디컬센터 원장이자 '24시간 고양이 육아대백과'의 저자인 김효진 수의사입니다. 오늘은 부쩍 잠이 늘어난 노령 반려묘를 걱정하신 집사님이 사연을 보내주셨습니다. 고양이를 키우는 가정이 늘고 반려 고양이의 평균 수명도 늘어난 만큼, 노령 반려묘의 수도 증가했죠. 오늘은 나이 든 고양이의 행동 변화를 살펴보고, 집사가 어떻게 돌봐주면 좋을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고양이가 7,8세만 넘어도 ‘나이 들었다!’고 했지만, 최근에는 20살 넘게 사는 고양이들도 상당히 흔합니다. 그렇다면 몇 세부터 고양이는 나이가 들었다고 봐야 할까요?
위의 표는 국제고양이학회에서 고양이의 나이를 사람의 나이와 비교한 표입니다. 이를 보면 만 나이로 대략 11세 이상이면 노령이고, 15살이 넘으면 사람 나이로 만 76세 가량이 되어서 초고령 고양이로 분류됩니다. 따라서 우리 집 고양이가 만으로 11세가 넘으면 이제 ‘나이가 들었구나!’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도 나이가 들 때 어느 순간 갑자기 늙는 계단식 노화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고양이들도 상당히 나이가 들 때까지 외향상 큰 변화를 보이지 않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나이 든 티가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럴 때 나타나는 큰 특징 중에 하나가 감각이 둔화되고, 수면 시간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고양이의 수면 시간은 상당히 길어서 정상의 성묘도 하루 12~15시간 정도 잠을 자는데, 나이 든 고양이는 하루 16시간에서 20시간 정도로 수면시간이 좀 더 늘어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집사 눈에는 정말 하루 종일 잠을 자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동시에 청력도 둔화되기 때문에 집사가 집에 돌아오거나 곁에서 불러도 뒤늦게 반응을 하는 경우도 흔합니다.
이런 모습들은 일정 부분은 정상적인 노화의 과정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대로 내버려두면 고양이의 ‘제지방량(Lean body mass)’이 계속 줄어들게 됩니다. 제지방량이란 근육이나 뼈 등 지방을 제외한 몸의 구성 성분을 말하는데, 이것을 잘 유지해 주어야만 고양이의 삶의 질과 수명을 잘 유지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고양이가 노화현상을 겪을 때에는 집사가 고양이를 챙겨 먹이고 잘 돌보아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노화를 겪고 있는 고양이를 위해 집사가 어떤 것들을 돌보아 주어야 할까요?
먼저 발톱이나 털 관리를 대신해주어야 합니다. 젊었을 때에는 스크래쳐도 잘 사용하고, 그루밍도 잘 하겠만 이젠 스스로 이런 일들을 잘 처리하지 못합니다. 심한 경우 헤어볼이 장을 막아 장폐색을 유발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잘 사용하던 화장실의 문턱도 관절염이 있는 노령묘에게는 너무 높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초고령 고양이를 위해서는 라자냐 접시같이 납작한 형태의 고양이 화장실을 별도로 마련해 줘야 합니다. 또 멀찍이 있는 화장실까지 가는 것이 힘들 수 있기 때문에 잠자리나 쉬는 자리 주변에 추가적인 화장실을 준비해도 좋습니다. 특히 이런 점은 밥그릇이나 물그릇에도 해당되는데, 노령 고양이들은 목이 마르거나 배가 고파도 멀리까지 가는 것이 귀찮아서 참을 수가 있습니다. 가뜩이나 노령 고양이들은 탈수되기 쉬운데 이렇게 되면 탈수나 식욕저하가 심화되기 쉽기 때문에, 이런 필수 자원들 역시 고양이가 좋아하는 휴식처나 잠자리 주변에 여벌로 만들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반면 노령의 고양이가 다칠까 봐 높은 곳에 못 오르게 하거나, 고양이가 더 이상 높은 곳에 오르지 못한다고 내버려두어서는 안됩니다. 고양이에게는 높은 곳에 올라 휴식하는 것이 꼭 필요한 본능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높은 곳에 오를 수 있도록 캣스텝이나 슬라이드를 설치해 주고, 뛰어내리는 공간 아래는 두툼한 논슬립 패드 같은 것들을 마련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본능을 충족할 수 있는 배려는 ‘환경 풍부화’와 관련되어 있는데, 이는 노령 고양이에게 흔한 치매를 예방하거나 지연시키는 데에도 도움이 됩니다. 따라서 새로운 장난감을 이용해서 지속적으로 놀이 활동을 해주는 것 역시 노령묘에게 필요합니다. 노령 고양이의 활력 수준을 감안해서 노즈워크나 먹이를 숨긴 퍼즐 장난감 등을 보금자리 곳곳에 살짝 숨겨두는 것이 추천됩니다.
또 집에 다른 젊은 고양이들이 함께 살고 있다면, 노령의 고양이가 다른 고양이들에게 치이지 않도록 혼자만의 공간을 꾸려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조명은 낮은 조도로 해주고, 바닥에는 미끄럼 방지 패드와 푹신한 담요로 쉴 곳을 꾸려주세요. 가능하다면 여기에 밥그릇, 물그릇, 화장실 등을 갖춰주어서 다른 고양이 눈치 보지 않고 필수 자원을 쓸 수 있도록 해주면 더 좋습니다. 이 공간의 크기는 클 필요가 없지만, 조용하고 한적한 곳에서 노령묘가 다른 고양이에게 방해받지 않도록 해주는 게 중요합니다.
노령묘가 변화하는 모습은 점진적이기 때문에 집사가 이런 변화를 너무 늦게 알아차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 집 고양이가 나이 들었다면 매일 밥을 줄 때 밥 먹는 양을 계량해서 먹는 양이 줄거나 늘지 않았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또 1주일에 1번 체중을 체크해서 체중이 줄거나 늘지 않는지 확인해 주세요. 특히 2개월 이내에 체중이 10% 이상 빠지는 경우, 암과 같이 굉장히 위중한 질환이 있을 가능성이 높은데요. 때문에 체중 감량을 일부러 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고양이가 5% 이상 체중이 빠진다면 재빨리 병원을 찾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고양이의 몸무게는 사람에 비해 아주 적기 때문에 집사가 이 차이를 크게 느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4kg 나가던 고양이는 200g 정도만 체중이 줄어도 체중이 5% 정도 줄어든 셈입니다. 따라서 눈대중으로만 고양이의 체형을 평가하기보다는 매주 고양이 체중을 재면서 계산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이처럼 노령의 고양이에서는 단순한 노화 외에 질병으로 인한 갑작스러운 식욕저하, 체중 감소 등이 훨씬 흔한 편입니다. 질환 초기에 동물병원을 찾는다면 식이 교체나 영양제 등으로 질환을 관리할 수도 있는 반면, 적절한 시기를 놓친다면 굉장히 위중한 상태가 되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노령 고양이가 식욕이나 활력이 저하되거나 이상 증상을 보인다면 젊을 때보다 더 빨리 병원을 찾아보는 것이 안전합니다. 현재 사연을 주신 집사님의 경우도 고양이가 단순히 잠만 많이 자는 것이 아니라 식욕도 줄고 체중도 감소하고 있기 때문에 병원을 찾아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식욕, 활력 및 체중 감소와 같은 증상들을 비특이적 증상이라 하는데, 이런 증상만으로 어떤 원인이 있는지 예상할 수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일단 검진을 통해 질병적 원인이 있는 것을 배제하거나 그에 따른 조언을 얻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고 관리하는 것이 노령 고양이의 수명을 늘리고 삶의 질을 유지하는 데 중요하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검진을 받는 것이 강력히 권장됩니다. 미국 고양이 전문의 협회(American Association of Feline Practitioners · AAFP)는 2021년 노령 고양이를 케어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는데, 이에 따르면 10~15세의 고양이는 1년에 2번, 15세 이상 고양이는 4개월에 한 번씩 건강검진을 받는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노령 고양이 돌봄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위의 가이드라인을 참조해 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고양이의 시간은 사람에 비해 짧기 때문에 마냥 귀여운 막내 같았던 우리 집 고양이도 생각보다 빨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죠. 이 시기가 어쩌면 나에게 늘 큰 사랑을 주었던 고양이에게 집시가 보답할 수 있는 시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고양이가 나이 들어도 아프고 힘들지 않길 바라며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