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래 여성 잔혹 살해…시작부터 끝까지 자기 잘못 없다는 정유정

입력
2024.08.03 16:00
훈육 방식, 어려운 가정 환경에 강한 불만
스스로 ‘세상서 가장 불쌍하다’ 생각 빠져
범행 대상 물색, 치밀하고 잔인한 살인 실행
많은 반성문, 사과에도 진심에 대한 의구심

과외 아르바이트 중개앱을 통해 일면식도 없던 또래 여성에게 접근해 잔인하게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해 유기한 혐의로 재판을 받은 정유정(24)이 지난달 13일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2023년 범행 이후 1년 이상 진행된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정유정이 저지른 인면수심의 악행이 알려지면서 우리 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다.

어린 시절부터 지속된 가족과의 갈등

정유정은 1999년 9월 부산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2001년 7월 부모의 이혼으로 아버지, 할아버지와 살다가 2004년 7월 아버지가 교도소에 가게 되자 할아버지와 조선족 출신의 새 할머니와 살게 됐다. 할아버지, 새 할머니와 살았지만 대화가 잘 안 통하고, 성격이 맞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조부모의 훈육 방식과 어려운 경제적 환경에 강한 불만을 품게 됐다. ‘학대를 받고 있다’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중학교 2학년 때인 2013년 5월 아버지가 출소하자 할아버지의 집을 떠나 아버지와 살게 됐다. 아버지의 보살핌과 경제적 지원을 받아 이전보다 생활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품었지만 희망은 낙담으로 변했다. 출소한 아버지는 어렵게 일자리를 얻어 겨우 생계를 유지할 정도였고, 정유정을 제대로 돌볼 수 없었다. 결정적인 건 아버지가 정유정에게 알리지도 않고 재혼을 한 것.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 원망과 함께 할아버지와 다시 생활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정유정은 낙담했다고 한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고등학교 2학년 무렵까지 아버지와 연락을 끊고 살았다. 하지만 할아버지, 새 할머니와의 반목이 커졌고 급기야 새 할머니의 뺨을 때리는 등 폭행을 저지른 끝에 결국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왔다.

나의 처지는 모두 가족과 사회의 탓

아버지, 새 어머니와의 생활을 시작했지만 불편한 관계는 변하지 않았다. 딸의 늦은 귀가, 약속 불이행이 못마땅했던 아버지는 훈육을 이유로 정유정의 짐 전부를 아파트 현관문 밖에 내놓기도 하고, 현관문 비밀번호까지 바꿔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도 했다. 정유정에게는 ‘아버지가 나를 내쫓고 버렸다’고 생각할 정도로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쌓였다. 다시 할아버지 집으로 돌아간 다음 6년 동안은 아버지와 일절 연락을 하지 않고 지냈다.

이처럼 가족들과 깊은 불화를 겪으면서 정유정은 2018년 고등학교를 졸업한다. 대학에 가서 혼자 살기를 원해 재수까지 했지만 끝내 합격하지 못하고 결국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공무원 시험도 준비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정유정은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다’고 생각하며 처지를 비관했다.

2022년 9월쯤 연을 끊고 살았던 아버지와 재회를 했다. 하지만 여전히 어려운 생활은 변함이 없었고, 오히려 힘들었던 과거가 계속 떠올라 괴로워했다고 한다. 어린 자신을 버리고 재혼한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과 원망, 새 할머니와의 불화, 아무런 조치를 해주지 않은 할아버지에 대한 불만과 미움 등이 더욱 깊어졌다. 자신의 불우한 성장 과정, 가족 관계, 현재 처지에 대해 불만을 품고 이를 모두 가족과 사회 탓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재판부는 "(정유정은) 타인이 자신에게 한 행위나 언행으로 인해 입은 피해를 과장되게 진술하면서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자신의 범행을 합리화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사람을 죽여서라도 분을 풀고 싶다"


정유정은 그해부터 인터넷에서 ‘가족에게 복수하는 방법’, ‘존속살인’, ‘살인 방법’ 같은 단어들을 검색했고 차츰 가족이 아닌 사람을 죽여서라도 자신의 분노를 푸는 상상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정유정은 ‘안 죽이면 분이 안 풀린다’라는 메모를 하는 등 살인으로 분노를 풀고 싶다는 생각에 휩싸이게 됐다. 2023년 5월 20일쯤에는 ‘이제는 실제로 사람을 죽여 봐야겠다’고 결심하게 됐다.

정유정은 기존에 사용해 본 적이 있던 과외 앱을 이용해 살해할 대상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2023년 5월 20일 해당 앱에 ‘AJ’라는 닉네임으로 새로운 계정을 만들었다. 프로필에는 “’부산 북구 학부모’, ‘자녀정보:중3’, ‘저희 아이가 여자 아이라 같은 여자 선생님을 구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맞벌이라 집에 없을 때가 많습니다’, ‘4과목을 선택했는데 그중 한 과목이라도 잘 지도해주실 분을 찾고 있습니다’”라는 거짓 정보를 올렸다. 모두 54명의 과외 교사에게 “안녕하세요, 선생님과 상담하고 싶어 연락 드렸어요”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연락이 닿은 과외 교사들에게 자신의 중학생 딸의 과외를 원한다는 취지로 대화를 나누며 살해 대상자를 물색했다. 정유정은 자신이 쉽게 살해할 수 있도록 ‘여성, 혼자 거주, 교사 집에서 과외 수업이 가능’한 조건의 사람을 찾았다. 며칠 뒤인 5월 23일 오후 1시쯤 한 20대 여성 과외 교사가 이 같은 조건에 맞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여성 과외 교사의 집에 중학생 딸을 보내 영어 시범 수업을 받겠다는 거짓말로 만날 약속을 정했다.

흉기 미리 준비, 살해 후 시신 훼손하고 유기

정유정은 피해 여성 교사의 집으로 있지도 않은 자신의 중학교 3학년 딸을 26일 오후 6시쯤 보내겠다고 했다. 하지만 피해 여성을 찾아간 것은 교복을 입은 정유정 본인이었다. 자신의 집에 있던 과도 2자루와 중식도 1자루를 넣은 검은색 에코백을 들고 집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부산 금정구 피해자의 아파트에 오후 5시 40분쯤 도착했다. 정유정은 자신의 동선을 감추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피해 여성이 살고 있는 아파트 14층에 바로 내리지 않고 15층에 내려 한 층을 걸어 내려갔다. 교복 차림의 정유정은 의심 받지 않고 피해 여성의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거실에서 피해 여성이 나이를 묻자, 정유정은 “사실은 25세”라고 말한 뒤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털어 놓았다. 이어 “자살을 하고 싶은데 혼자 죽기는 너무 억울해 같이 죽을 사람을 찾아왔다”고 말했다. 깜짝 놀란 피해 여성이 도망가려고 하자 정유정은 “장난이다”라며 피해 여성을 안심시킨 뒤 자신의 에코백에서 흉기를 꺼내 피해 여성이 숨질 때까지 반복적으로 찔렀다. 정유정은 피해자가 실종된 것으로 보이도록 시신을 훼손한 뒤 유기하기로 마음먹었다.

정유정은 범행 후 오후 6시 50분쯤 피해자의 옷장에서 피해자의 옷을 꺼내 갈아입고 피해자 집에서 나와 계단으로 내려가 13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범행 현장으로 다시 돌아온 그는 비닐봉투와 대형 캐리어 등에 시신을 담은 뒤 택시를 타고 사건 발생 다음날 새벽 1시쯤 경남 양산의 한 공원으로 이동해 수풀에 시신을 유기했다. 하지만 당시 택시 기사는 늦은 시각 피가 묻은 캐리어를 수풀에 버리는 점 등을 이상하게 여겨 경찰에 신고했고, 출동한 경찰은 현장에서 정유정을 붙잡았다.


재판부 "진정한 반성과 뉘우침도 없어"

정유정은 재판 과정에서 정신 관련 질환을 앓고 있는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고, 범행은 당시 심신 미약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의 판단은 명확했다. 재판부는 “정신 질환 관련 진단은 피고인(정유정)이 호소하는 증상에 기초한 임상적 추정 결과”라며 “진단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는 범행 당시 정신질환 등으로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또 “범행 대상을 물색하고 범행 도구 준비,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한 동선까지 고려하는 등 범행을 치밀하게 계획하고 준비해 살인, 사체 손괴와 유기를 실행했다”면서 “이 같은 모습들은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의 사람이 보일 수 있는 사고와 그에 따른 행동들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정유정이 반성을 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꼈는지에 대해서는 “제출한 반성문의 대부분 내용이 자신의 불행했던 처지를 알아 달라는 것과 살고 싶다는 것이고 사죄의 말은 있으나 마치 미리 대비해 둔 것처럼 너무나도 작위적이고 전략적”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과연 피고인이 자신의 범행을 진심으로 반성하고 뉘우치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남길 수밖에 없다”며 정유정의 반성을 진정성이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밝고, 친절하며, 사회성이 좋은 성격이었다고 한다. 친절한 성격은 피해자가 피고인과 나눈 과외 앱 대화 내용을 통해서도 드러난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이제 막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하던 20대 젊은 청년이었던 피해자는 그 꿈을 펼쳐보지도 못한 채, 원한을 사지도, 일면식도 없었던 피고인에 의해, 허망하고 비참하게 살해돼 꽃다운 나이에 삶을 마감하고 말았다"고 애도했다.

부산= 권경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