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쾅 쾅, 드르륵드르륵’...포천 영평 로드리게스 사격장 가보니

입력
2024.07.3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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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유일 미군 전용 사격장 소음피해 심각 
지난달 22~23일 아파치 헬기 사격
쥐꼬리 보상금에 예고 없이 사격까지
주민들 '사격장 폐쇄' 대규모 집회

지난달 30일 오전 경기 포천시 창수면 미 8군사령부가 주둔하고 있는 영평리의 로드리게스 사격장. 후문 상공에서는 아파치 헬기 한 대가 정지비행을 하고 있었다. 대략 1km 정도 떨어져 있는 컨테이너 안에서 소음을 측정한 결과 1분여간 평균 65데시벨(db)을 기록했다. 소음·진동법 시행규칙상 주거지역 및 녹지지역 등의 소음 기준의 최대치다. 미 8군사령부는 1954년부터 이곳에 주둔하고 있다.

로드리게스 사격장은 전국에서 유일한 미군 전용 사격장이다. 이날 ‘사격장 폐쇄’ 집회를 연 ‘포천시사격장 등 군관련시설 범시민대책위원회(범대위)' 강태일 위원장은 “주민들이 집회하고 있는데 버젓이 헬기를 띄워 방해하고 있다”며 “저런 식으로 20~30분씩 정지비행 하면 진동까지 느껴져 심신이 모두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범대위에 따르면 2018년 미8군 측은 주민들의 소음피해를 고려해 “로드리게스 내에서 아파치 헬기 운행만 하고 사격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지난 22일(오전 9시 25분)과 23일(낮 시간)에도 사전 통보 없이 아파치 헬기 사격이 이뤄지는 등 사격훈련은 이어지고 있다.

미군 측은 이날 범대위와의 대책회의에서 “소통 부재로 사격을 하게 됐다. 유감을 표명한다”는 입장을 낸 것으로 알려졌지만 범대위 측이 “아파치 헬기 사격 안 한다는 문서로 달라”는 요구에 대해서는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강 위원장은 "이곳의 소음은 전투기 이착륙 때 나는 소리와 차원이 다르다”며 “정지 비행 소음도 귀청이 떨어질 정도인데 기관총과 포를 쏘면 순간 심장이 벌렁이고, 진동으로 바닥이 들썩거린다”고 했다.

영평면 영평1리 로드리게스 사격장 정문 앞에서는 ‘쾅, 쾅, 펑’, ‘드르륵, 드르륵’ 하는 총성으로 귀가 먹먹해질 지경이었다. '쾅' 소리 후에는 약간의 진동도 느껴졌다. 5분 정도 간격으로 이뤄진 사격은 20여 분간 지속됐다. 유재한(70) 영평1리 이장은 “쾅 소리는 박격포고, 드르륵 소리는 기관총 쏘는 소리로 하루가 멀다 하고 저렇고 쏘아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70년 동안 평생 안보라는 이유로 희생했는데 보상금은 쥐꼬리만큼 주고, 토지에는 ‘소음 3구역’이라고 표기해 땅 매매도 어렵게 만들었다"며 불만을 쏟아냈다.

심각한 소음피해도 주민들을 고통스럽게 하지만, 불합리한 보상금 체계는 주민들을 갈라놓고 있다. 김광덕 범대위 사무국장은 “법이 마을 전입시기 등을 따져 보상금 지급 여부, 액수를 결정하기 때문에 같은 마을에 살아도 누구는 받고 누구는 못 받는다"며 "개인이 아닌 읍·면·동 등에 일괄 지급하도록 관련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피해지역인 영북·영종·이동·창수면 등 4개면 총 2만160명 중 보상금을 받는 주민은 3,538명에 불과하다. 이들이 받는 보상금도 한 달 평균 1만5,000원 수준이다. 이에 범대위는 지난달 25일 ‘피해주민 갈등만 유발하는 군소음보상법 전면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전국 군소음피해 지역 주민과 공동대응한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강 위원장은 “우리도 접경지역이고, 북한이 있는 한 사격도, 훈련도 하지 말라는 것 아니다”라면서도 “사전 약속 없이 사격해 놓고 미군, 국방부 등 어느 누구도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안 하고 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 우리는 끝까지 싸우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임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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