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3일 오후 3시 서울시 중구 명동에 위치한 올리브영 명동타운 1, 2층은 전 세계 사람을 모아놓은 듯했다. 백인, 흑인, 중국인으로 보이는 동양인, 히잡을 쓴 이슬람 신자까지. 이들은 매장 측이 튼 K팝 선두 아이돌 부석순의 '파이팅 해야지'를 들으며 들뜬 표정으로 테스트 제품을 사용하고 장바구니에 담았다.
2층에 있는 14개 계산대 중 8개가 손님을 맞고 있는데도 대기 줄엔 열 명 정도 기다렸다. 대기 공간엔 '세금 환급을 위해 여권을 미리 준비해달라'는 문구가 한국어 대신 영어, 중국어, 일본어로 적혀 있었다. 올리브영을 나와 명동 입구까지 약 260m 이어지는 거리는 외국인 관광객과 이들을 사로잡으려는 명동 명물 푸드트럭이 빼곡했다. '명동의 부활'을 상징하는 듯했다.
조승현 올리브영 명동타운 점장은 "지난해부터 가족, 친구 단위로 오는 외국인 관광객이 늘기 시작했다"며 "마스크팩, 스킨케어 제품은 한 번에 50장 이상 구매하는 고객이 많고 최근에는 K드라마, K팝 등 한류 콘텐츠 영향으로 색조 화장 구매도 증가세"라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았던 명동 로드숍이 다시 외국인 관광객으로 붐비고 있다. 차별화된 'K뷰티', 'K패션' 상품을 찾는 수요가 늘면서 CJ올리브영, 무신사, 아성다이소(다이소) 등 가성비 로드숍의 외국인 매출이 눈에 띄게 늘었다. 과거 명동은 백화점, 면세점을 중심으로 한 럭셔리 쇼핑의 성지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한국만의 개성 있는 문화와 관련 상품을 체험할 수 있는 이색 쇼핑 명소로 거듭나고 있다.
16일 다이소에 따르면 2분기(4~6월) 전체 매장에서 발생한 해외카드 매출, 결제 건수는 각각 전년 대비 48%, 42% 증가했다. 특히 외국인 고객 비중이 큰 명동역점, 명동본점만 따로 떼어 보면 2분기 해외카드 매출은 각각 67%, 64% 뛰었다. 외국인 사이에서 다이소가 '가성비 선물 상점'으로 알려지면서 해외카드 매출이 크게 늘고 있는 것이다.
다이소 관계자는 "균일가로 상품을 판매하다 보니 외국인이 지인에게 선물할 상품을 많이 구매한다"며 "K식품, K뷰티 제품 등 잘 팔리는 상품을 중심으로 종류와 보유 재고를 늘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CJ올리브영이 명동에서 운영하는 매장들도 외국인 관광객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명동타운점 등 명동 내 6개 올리브영 매장의 상반기 외국인 매출은 전년 대비 168% 뛰었다. 이 매장들에서 외국인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90% 정도다. 핵심 점포인 명동타운점을 찾는 외국인 고객은 하루 평균 1만~1만5,000명, 구매 고객은 5,000명에 달한다. 패션 플랫폼 무신사의 무신사 스탠다드 명동점도 외국인 매출 비중이 오픈 직후인 3월 30.7%에서 7월 46%로 커졌다. 다른 주력 매장인 홍대점(35%), 성수점(30%)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2019년보다 명동 로드숍에 더 많은 외국인이 몰리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세계 경제 불확실성 확대로 외국인의 씀씀이가 줄어든 데다가 한국 제품은 합리적 가격에 품질도 좋다는 인식이 퍼져 가성비 좋은 로드숍을 찾게 됐다는 것이다. 주된 외국인 관광객이 '큰손'으로 불리던 유커(중국인 단체 관광객) 중심에서 다양한 국가의 개별 관광객으로 변화한 점도 가성비 소비가 자리 잡은 배경이다.
외국인이 쇼핑 정보를 얻는 방식이 달라진 면 역시 로드숍의 인기를 높이는 요인이다. 과거에는 품질이 보증되는 백화점, 면세점을 으레 방문해 안전한 소비를 즐겼다면 지금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정보를 접하면서 내국인의 쇼핑 트렌드를 빠르게 따라잡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전 세계 어딜가나 비슷한 명품보다는 중소 브랜드라도 개성 있는 한국 제품을 많이 찾는다"며 "우리가 일상에서 소비를 즐기듯 외국인도 내국인과 유사한 트렌드로 '로컬 소비'를 즐기려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