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로움의 이면에 늘고 있는 빈 공간
인구 세 명 중 한 명이 나 홀로 사는 시대인 요즘, 혼밥이나 혼술이 더 이상 낯선 모습이 아니게 되었고, 건강하고 멋지게 인생을 즐기고 나이드는 것을 꿈꾸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의 일상화로 첨단 스마트폰으로 더 다채로운 삶을 살게 되었고 경제적 여유와 시간만 충족된다면 우리 주변에는 보고, 즐길 거리가 넘쳐 난다.
기술의 힘으로 시공간을 넘나드는 경험도, 내가 원하는 것이라면 맞춤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것도 익숙하다. 부족할 것 없이 풍요롭게, 느긋할 여유 없이 빠르게 빈틈없이 살아가는 우리 곁에서 '결핍'이나 '공허함'은 어울리지 않는 단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빽빽한 건물과 사람이 넘쳐나는 도심 골목길 어딘가에 빈집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살지 않는 빈집은 인구소멸의 정점인 농촌의 주택뿐만 아니라 서울 등 대도시에서도 관리방안에 대한 고민이 늘고 있다.
살아 있는 새로운 공간으로의 재탄생
최근 국회에서는 체계적으로 빈집을 관리하기 위한 '빈집관리법'을 발의하였는데 이제 빈집은 단순히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라는 주거공간을 넘어 제도적, 정책적으로도 주목해야 할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빈집은 비단 고령화나 인구 감소 등의 이유뿐만 아니라 재개발, 세금체납, 소유권 문제 등 개인적이거나 경제적이거나 다양한 이유로 방치되고 있기도 하다.
빈집은 거주공간으로서의 목적과 기능을 상실함과 동시에 각종 사고나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도 크며, 쓰레기나 오물의 불법 투기로 악취가 발생하는 등 주변 위생이 악화되고 잡초가 무성해지는 등 해당 지역의 경관을 훼손한다. 더욱이 오랫동안 방치된 빈집은 안전에도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빈집이 늘어날수록 주목받게 될 직업이 바로 '빈집 코디네이터'이다. 빈집 코디네이터는 지역 내 빈집 현황을 점검하고 빈집을 활용할 방안을 제안하며 이 과정에서 빈집 소유주, 지역주민, 지자체, 건축이나 도시계획전문가, 그리고 인테리어 전문가 등과 협업하여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역할을 한다. 빈집 코디네이터를 거친 집들은 또 다른 거주공간으로, 지역주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혹은 레스토랑, 사무실 등의 상업공간으로 다양하게 재탄생된다. 따라서 건축에서부터 시공, 지역에 어울리는 콘텐츠기획 등 다양한 전문가가 빈집의 재생을 위한 전문가에 포함될 수 있다.
빈집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국가인 일본의 경우 최근 일본 총무성이 발표한 2023년 10월 기준으로 빈집은 899만 호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지자체에서 '빈집 뱅크'를 통해 활성화를 기하거나 비영리단체들이 빈집 코디네이터를 육성하여 빈집의 관리, 활용방안 제안 등을 실시하기도 하며 빈집을 활용하고자 하는 창업가를 지원하기도 한다.
빈집이 늘수록 코디네이터도 필수
빈집 관련 법이 발의된 것은 조사기관에 따라 국내 빈집 현황 통계가 들쑥날쑥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에 정부 차원에서도 빈집 실태조사에 대한 세부 추진절차와 지자체의 빈집관리 관련 전담부서 지정 등을 포함한 '전국 빈집실태조사 통합 가이드라인'(이하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에서도 SH공사와 함께 빈집을 매입해 청년이나 신혼부부를 위한 주택이나 공용 주차장 등으로 탈바꿈하는 사업을 하고 있으며 많은 지자체, 특히 인구감소로 빈집이 늘고 있는 농어촌 지역에서 빈집 활용을 위한 정책사업을 펼치고 있기도 하다.
이에 따라 최근 국내에도 일본처럼 직업으로서의 빈집 코디네이터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고 머지않아 지역재생과 연계한 콘텐츠를 기획하고 공간을 탈바꿈하기 위한 빈집 전문가의 활약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