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22일 발표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의 '사교육 카르텔' 1차 수사 결과, 입시학원에서 금품을 받고 모의 수능 문제를 만들어 팔아넘긴 현직 교사 24명이 검찰에 송치됐다.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청탁금지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 이들은 적지 않은 숫자에 교사 신분을 망각한 돈벌이 행태로 새삼 충격을 줬다. 어떤 교사는 5년에 걸쳐 대형 학원에 문항을 팔아 2억5,000만 원이 넘는 거액을 챙겼고, 심지어 수능 출제 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이 주관하는 수능 모의평가(모평) 검토진으로 참여한 뒤 유사 문제를 만들어 모평 시행 전에 판매하는 파렴치한 행태를 보였다. 우려했던 본수능 문제 유출은 없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아직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입건자가 40명이라니 수사 결과를 마저 지켜봐야겠지만.
주지하듯이 사교육 카르텔 수사는 지난해 6월 윤석열 대통령의 문제 제기에서 시작됐다. 그해 3월부터 공교육 교과과정을 벗어난 고난도 문제인 '킬러문항'을 출제하지 말라고 교육당국에 당부했건만, 그달 모평에서도 킬러문항 시비가 일자 그런 '불호령'을 내렸다는 것. 당장 교육부 대입 담당 국장이 경질되고 평가원은 감사 대상이 됐다. 윤 대통령은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호출한 자리에서 '대학 전공 수준의 비문학 문항'을 킬러문항의 예시로 들면서, 자신의 지시가 이행되지 않은 이유는 '교육당국과 사교육 산업의 카르텔'의 소산이란 의심을 내비쳤다. 교육부는 6월 모평 문제 가운데 22건을 킬러문항으로 지목하면서,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 △사교육에서 문제풀이 기술을 익히고 반복 훈련하면 유리한 문항을 킬러문항으로 정의했다.
대통령의 '킬러문항 배제' 지시는 학교와 학원에 대한 서슬 퍼런 사정 정국으로 번졌지만, 정작 킬러문항 시비는 문제의 6월 모평 이후에도 지난해 9월 모평과 11월 본수능, 올해 6월 모평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문제 제기에 가장 앞장선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주로 수학 영역을 겨냥해 킬러문항이 온존하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수학이 공교육 교육과정 이탈 여부를 비교적 명확히 판단할 수 있어 그럴 것이다. 사실 대통령이 콕 집은 국어 영역의 고난도 지문은, 설령 고교 수준을 벗어난 개념을 다루고 있더라도, 수험생이 그 개념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도 사고력과 논리력을 동원해 풀 수 있다면 크게 문제 삼을 게 아니라는 견해가 많다. 오히려 수능 도입 초기에는 이런 문제 소재의 다양성과 유연성이 수능의 강점으로 꼽혔다.
오히려 정부가 심각히 여겨야 할 것은 수능이 주기적인 혁신 없이 틀에 갇힌 형식으로 30년을 유지해왔다는 점일 것이다. 입시업계 종사 경험이 있는 두 저자가 최근 출간한 '수능 해킹: 사교육의 기술자들'(문호진·단요 지음)은 수능 출제 원리가 간파되는 상황을 '수능 해킹'이라 칭하고, 이를 키워드로 사교육계가 수험생 커뮤니티의 '집단지성'까지 동원해 수능 문항 패턴을 파악한 뒤 이를 답습한 사설모의고사를 양산하는 현실을 서술한다. 반복적 문제 풀이로 수능 패턴을 체화한 수험생이라면, '헤겔의 변증법'을 운운하는 거창한 지문이 나오더라도, 문항을 일종의 퍼즐 맞추기로 치환해 어렵잖게 답을 찾아낼 수 있다고 저자들은 사례를 들어 입증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킬러문항은 상위권 변별에 필요한 문제를 확보하고자 사교육계의 '해킹' 시도에 철옹성을 쌓는 출제기관의 몸부림이라 할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