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29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한동안 서먹해진 양자 관계 개선에 시동을 걸었다. 지난해 12월 중국의 '신(新)실크로드 전략'인 일대일로(一帶一路)에서 이탈리아가 전격 탈퇴한 이후, 두 정상 간 회동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탈리아로선 성장 동력 확보가 필요하고, 중국도 유럽 내 우군 확보가 절실한 터라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만남이었다.
이탈리아 안사통신 등에 따르면 멜로니 총리는 27일부터 닷새 일정으로 중국을 공식 방문했다. 2022년 10월 취임한 멜로니 총리의 첫 방중 행보다. 멜로니 총리와 시 주석의 만남도 같은 해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이후 1년 8개월 만에 처음이었다.
멜로니 총리의 방중 목표는 '중국과의 관계 재설정'이다. 유럽연합(EU) 외 국가 중에서는 중국이 미국 다음으로 경제 교류 규모가 크고, 이탈리아의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중국의 자금력 및 성장 동력에 일부 기댈 필요가 있기 때문에 '일대일로 탈퇴' 이후 사실상 공백 상태가 된 양자 관계를 재정립할 필요가 크다고 본 것이다. 앞서 이탈리아는 2019년 주세페 콘테 총리 집권 당시 주요 7개국(G7) 중 유일하게 중국과 일대일로 협정을 맺었으나, △미중 패권 갈등 심화 △경제적 실익 저조 등을 이유로 가입 4년여 만에 이를 탈퇴했다. 멜로니 총리는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외교·경제적 역할이 크다는 점을 강조하며 "중국은 필연적으로 모든 역학 관계를 다루는 매우 중요한 대화자"라고 말했다.
중국 역시 이탈리아와의 관계 개선이 필요했다. 일대일로가 여전히 중국의 중요한 대외 전략인 것은 물론, EU가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관세를 최고 47.6%까지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등 대(對)중국 무역 장벽을 강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EU 내에 '내 편'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시 주석도 중국과 이탈리아가 고대 실크로드 양쪽 끝에 위치했다는 점을 상기하며 "국가들은 서로 열려 있으면 발전하고 닫혀 있으면 퇴보한다"고 말했다. 멜로니 총리도 시 주석에게 "이탈리아가 중국과 EU의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으며 균형 잡힌 무역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두 나라는 실제로 28일 '3개년 행동계획'을 체결하며 전기차, 재생에너지, 조선, 항공우주, 인공지능(AI) 등에서의 협력을 약속했다. 멜로니 총리는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와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만난 뒤 해당 문서에 서명했고, "양국에는 함께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 있다"며 "결단력, 구체성, 상호존중을 바탕으로 그 길을 닦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고 말했다. 리 총리도 "무역 및 투자 협력을 더욱 역동적이고 지속가능하게 만들자"고 화답했다.
'새로운 관계'를 다짐하면서 상대방을 겨냥해 뼈 있는 발언도 남겼다. 멜로니 총리는 "이탈리아는 중국과의 무역에서 적자가 크다"며 "(중국은) 올바른 방향으로 격차를 좁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탈리아의 대중 무역 적자는 약 411억 유로(약 61조6,627억 원·2022년 기준)로 집계됐다. 멜로니 총리는 투자 불균형 해소, 공정 경쟁 환경 조성 등도 중국에 요구했다. 리 총리 또한 "이탈리아가 중국과 협력해 중국 기업에 보다 공정하고 정의로우며 차별 없는 사업 환경을 제공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