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를 못 보내는 사람들...20대는 편지 썼고, 4050은 이어폰을 꽂았다

입력
2024.07.3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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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기 떠난 후 대중 추모 풍경]

"믿음이 흔들릴 때마다 선생님 삶을 떠올리겠습니다."

지난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소재 아르코꿈밭극장(옛 '학전') 앞 화단에 "김민기 선생님께"란 문구로 시작하는 이런 내용의 손편지가 놓여 있었다. 글쓴이는 자신을 "평범한 20대"라고 소개했다.



"믿음 흔들릴 때 떠올리겠다"는 청년의 약속

A4 용지보다 작은 크기의 종이에 볼펜으로 눌러 쓴 편지엔 김민기를 향한 청년의 애틋한 마음이 녹아 있었다. 여느 20대처럼 김민기를 잘 몰랐던 그는 두 달여 전 방송된 SBS 다큐멘터리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를 보고 고인의 음악과 삶에 대해 처음 알았다고 했다. 1977년 인천 부평 봉제공장에 취직한 '청년 김민기'는 동료 공장 노동자의 합동결혼식 축가로 '상록수'를 만들었고, 야학에서 달동네 아이들과 어린 노동자들을 가르쳤다. 김민기의 이런 삶의 여정을 통해 "내 주변에 어려운 이들을 지나치지 않고 자세히 들여다보는 마음"이었다고 청년은 적었다. 그는 편지에 "(김민기 선생님은) 배고프고 꿈 많은 청년을 위해, 공장 노동자들을 위해, 삭막한 현실에 방치될 뻔 한 아이들을 위해 가진 모든 능력을 활용하셨다"며 "전 선생님처럼 명석한 두뇌도, 대단한 작곡 능력도 없지만 약자를 향한 그 마음으로 살아가겠다"고 썼다.

김민기는 생전 33년 동안 작품을 올리고 신인 가수와 배우들을 발굴한 옛 학전 앞마당에 화단을직접 가꿨다. 거기엔 "서투르고 쉽게 절망하던 시절, 선생님 노래를 들으면서 살아낼 수 있었다"는 내용의 추모 편지들이 놓여 있었다. 노란 국화꽃이 담긴 바구니엔 "아름다운 삶의 상징, 선생님이 너무 일찍 떠나셔서 마음이 먹먹하다"는 문구가 적힌 메모지가 분홍색 빨래집게에 꽂혀 있었다.


'아침이슬' 노래 재생 27배 증가한 사연

김민기는 지난 21일 세상을 떠났지만, 사람들은 그를 잊지 못했다. 4050세대는 음원 플랫폼에서 그의 음악을 들으며 추모했다. 한국일보가 국내 최대 음원 플랫폼 멜론에 의뢰해 김민기 별세 소식이 알려진 22일부터 발인식이 열린 24일까지 김민기 음악 재생 수(스트리밍)를 조사해 보니, '아침이슬'은 전주 같은 기간 대비 27배 증가했다. 이 기간 '아침이슬'을 들은 10명의 청취자 중 7명(71%)은 4050세대였다. '상록수'와 '아름다운 사람' 재생 수도 각각 17배 뛰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라디오엔 김민기 노래 신청 사연이 쏟아졌다. KBS·MBC·SBS 등 지상파 3사 음악 전문 라디오채널 통틀어 22일부터 28일까지 가장 많이 전파를 탄 대중음악은 김민기가 직접 부른 노래(총 10회)였다. 가장 많이 선곡된 노래는 '아침이슬'과 '친구'(각 2회)였다.


"'김민기 다큐 영화' 제작도 고사"

김민기가 눈을 감은 뒤 SBS는 지난 24일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를 다시 내보냈다. 콘텐츠 기획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 다큐멘터리를 기획할 때 한 영화제작사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을 (고인에게) 제안했는데 거절했다"며 "자신과 관련된 작품과 이야기의 상업적 이용을 마지막까지 경계했다"고 귀띔했다. 김민기의 고향인 전북 익산시는 추모 공원 조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유족은 29일 입장문을 내 고사했다. "고인의 작업이 '시대의 기록 정도로 남았으면' 했던 뜻에 따라 고인의 이름을 빌린 추모 공연이나 추모 사업을 원하지 않는다"는 게 유족의 입장이다.

스스로를 누군가의 뒤에 있는 사람, 즉 '뒷것'으로 살기 바랐던 김민기가 어린이 공연의 씨앗을 뿌린 아르코꿈밭극장엔 26일 손을 잡고 어린이 공연을 보러 온 아이와 부모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고인의 뜻을 기려 어린이·청소년 공연을 중심으로 운영될 이 극장에선 국내외 아동 청소년극을 볼 수 있는 '아시테지 국제 여름 축제'가 열렸다. 극장 앞에서 만난 김수민(41)씨는 "학생 때 '학전'에서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봤다"며 "별세 소식을 듣고 옛 생각이 나 아이를 데리고 어린이 공연을 보러 왔다"고 말했다.

양승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