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본회의장이 24시간 불을 밝히고 있다. '방송4법' 처리에 반대하는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에 나서면서 25일부터 문을 닫지 못하는 상태다. 벌써 110시간이 넘었다. 감기 기운에 훌쩍이고 오래 서 있어 허리가 아픈데도 마이크를 계속 부여잡는 장면이 반복되고 있다.
의원들이 이처럼 열정적으로 일을 한 적이 있던가. 언뜻 보면 박수를 보낼 만한 일이다. 하지만 지지층의 반응조차 시큰둥하다.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는 "실익이 없다", "의원들 체력만 빼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같은 당 소속 주호영 국회부의장은 28일 "국회의사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증오의 굿판을 당장 멈춰야 한다"며 "여야 지도부가 국회의원들을 몰아넣고 있는 '바보들의 행진'을 멈춰야 한다"고 자조 섞인 목소리를 냈다.
윤석열 대통령은 벌써 15번째 거부권을 행사했다. 국회로 다시 돌려보낸 법안이 재차 통과된 경우는 전무하다. 그래서 나름 믿는 구석이 있다. 거대 야당의 일방적인 법안 처리를 막는 건 소수 여당의 필리버스터가 아니라 대통령의 거부권이다.
그런데도 여당은 국회에서 힘을 뺐다. 그사이 야당 과방위 의원들은 지난 주말 대전으로 몰려가 '빵 논란'에 불을 지폈다. 이진숙 방통위원장 후보자가 전례 없는 사흘간의 인사청문회를 거친 다음 날 벌어진 일이다. 대전의 제과점에서 과거 상황을 재연하려 빵을 24만 원어치 쓸어담으며 이 후보자의 법인카드 유용 의혹을 제기했다. 시끌벅적했지만 자질 검증과 거리가 먼 정쟁으로 끝났다.
여야의 극한 대립은 마치 올림픽 같다. 연일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총선 민심을 오독한 민주당은 온갖 청문회와 탄핵 추진, 합의 없는 입법 독주로 정치 실종을 자초했다. 국정운영의 책임을 진 여당은 제동을 걸지 못하고 요행만 바라고 있다. 국민 여론이 민주당의 독주 프레임을 외면하고 '이재명 사법리스크'가 부각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모양새다.
이처럼 시간을 허비하는 사이 정작 정치권의 관심이 필요한 곳에서는 곡소리가 터져 나온다. 티몬·위메프(티메프) 정산 지연 사태로 피해를 입은 피해자 1,500여 명은 생전 처음 겪는 일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피해자 모임 공동대표인 A씨는 29일 한국일보에 "사태가 알려진 수요일 아침부터 5일 동안 한숨도 못 잤다. 혀가 말려들어가고 온몸에 쥐가 난다"며 "환불이 진행되다가 멈추고 어느 기관도 제대로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국회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정무위가 30일 이번 사태와 관련해 금융감독원 등을 대상으로 긴급 현안 질의에 나선다. 진즉에 밤을 새워서라도 다뤘어야 할 사안이다. 여야는 한목소리로 "책임져야 할 사람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묻고 당정이 협력해 피해를 최소화하겠다(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국정조사를 추진하겠다(이해식 민주당 수석대변인)"고 공언했다. "부디 정치적으로 이용만 하고 넘기지 말아 달라"는 A씨의 간절한 바람은 과연 이뤄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