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 양궁 선수들이 2024 파리 올림픽에서 중국과의 접전 끝에 단체전 금메달을 품에 안으며 10연패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양궁 단체전이 정식채택된 1988년 서울 올림픽부터 37년간 왕좌를 한 번도 내어주지 않은 것이다. 올림픽 역사상 최초의 단일 종목 10연패를 성공한 비결은 원조 신궁 김수녕부터 MZ 신궁 임시현까지 꾸준한 세대교체 덕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전훈영(30·인천시청), 임시현(21·한국체대), 남수현(19·순천시청)으로 구성된 한국 여자 양궁 대표팀은 2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레쟁발리드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양궁 여자 단체전 결승전에서 중국을 5-4(56-53 55-54 51-54 53-55 <29-27>)로 물리쳤다. 우리 대표팀은 두 번째 세트까지 선점하며 순조롭게 출발했지만, 이윽고 점수를 내주면서 역전 위기에 처했다가 슛오프 끝에 승리를 확정 지었다.
이번 경기로 한국 여자 양궁 선수 중 24명이 단체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가장 큰 기여를 한 건 원조 신궁 김수녕이다. 1988년 고등학교 2학년의 나이로 출전했던 김수녕은 그해 왕희경, 윤영숙과 인도네시아에 30점 차로 크게 앞서며 연승 신화의 서막을 열었다. 고등학생 세 명이 이룬 쾌거였다.
4년 뒤인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는 이은경, 조윤정과 함께 2연패를 달성했는데, 이듬해 결혼과 함께 은퇴를 선언하면서 활을 놓았다. 그러나 그는 7년 뒤인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복귀했고, 후배 김남순·윤지민과 함께 단체전 금메달을 따며 녹슬지 않은 기량을 뽐낸 뒤 완전히 은퇴했다. 이렇듯 단체전에 나가는 족족 금빛 메달 사냥에 성공한 덕에 총 메달 수확량은 금메달 4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다. 아직까지 김수녕보다 많은 올림픽 양궁 금메달을 딴 선수는 없다.
그 뒤는 박성현이 이었다. 박성현은 올림픽, 세계선수권, 아시아선수권, 아시안게임에서 모두 개인전 우승을 경험한 유일한 그랜드슬래머다. 올림픽 단체전에서는 2004년과 2008년 금메달 멤버로 활약했고, 여기에 개인전 메달까지 더해 올림픽에서만 따낸 금메달이 3개다. 특히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중국과의 접전 끝에 박성현이 10점을 쏘며 1점 차(241 대 240)로 우승을 일궈내 화제가 됐다.
신궁 역사는 기보배에게 이어졌다. 고등학교 시절 번번이 대표 선발전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셨던 기보배는 22세이던 2010년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그해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후 2012년 런던올림픽에 팀 막내로 출전해 마지막에 9점을 쏘며 1점 차로 중국을 누르고 금메달을 땄고, 그해 개인전 금메달도 따냈다. 한국의 단체전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세트제가 도입된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도 기보배가 중심이 돼 단체전 8연패에 성공했다. 올해 초 은퇴한 그가 따낸 국제대회 메달만 56개로 이 중 37개가 금색이며, 2018년 임신한 몸으로 종별선수권 대회에 나가 우승을 거뒀던 일화는 그의 근성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로 유명하다.
2021년 도쿄 올림픽 무대에서는 MZ 궁사 안산(23·광주은행)이 명성을 떨친 데에 이어, 올해는 임시현이 에이스 칭호를 이어받았다. 무명에 가까웠던 임시현은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양궁 3관왕을 달성하며 알려졌는데, 올해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도 1위로 뽑혀 처음으로 올림픽 무대에 서게 됐다. 떨릴 법도 하지만 파리에서 기대되는 것을 묻는 질문에 "제 경기력"이라고 답하며 자신감을 드러낸 그는 25일 나선 랭킹라운드에서 694점으로 세계신기록을 작성하며 1위에 올랐고, 올림픽 단체전에서도 활약하며 10연패 사수에 성공했다.
임시현은 경기를 마친 뒤 "한국의 왕좌를 지키는 대회였지만, 40년이 흐르고 선수들이 모두 바뀌었다. 우리에게는 10연패가 새로운 목표였다"며 도전이 역사로 이뤄져 기쁘고 감사하다"고 소감을 남겼다. 해설위원으로 경기를 지켜본 선배 기보배는 "그동안 선배들이 쌓아온 업적을 더 빛나게 해주어 정말 고맙다. 내가 저 자리에 있었다면, 우리 선수들처럼 못 했을 것"이라며 "대범하게 이겨내 줘 자랑스럽다"고 박수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