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군'으로 분류되는 직업을 속인 채 보험에 가입하고, 이 사실을 수년간 알리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보험사가 이를 이유로 무조건 보험금 지급을 거절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계약 해지 사유가 되는 통지의무(계약 후 알릴 의무) 위반의 대상은 보험 기간 중 변동된 위험요소에 대한 것으로 한정돼야 한다는 이유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A씨 유족이 메리츠화재를 상대로 제기한 보험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지난달 27일 확정했다.
일용직 노동자였던 A씨는 2021년 7월 전남 해남군 공사현장에서 작업을 하던 중 사다리에서 중심을 잃고 떨어지면서 목숨을 잃었다. A씨는 2009~2016년 세 건의 사망보험을 들어 뒀는데, 유족은 이를 근거로 상해사망보험금과 골절진단비로 총 2억2,120만 원을 청구했다.
보험사는 "계약을 해지하고 보험금은 지급하지 않는다"는 안내문을 발송했다. 가입 당시 A씨가 직업을 △사무원 △행정 및 경영지원 사무직 관리자 등으로 허위 기재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보험계약 체결 후에도 A씨는 보험사고 위험성이 높은 자신의 '진짜 일'을 알리지 않았다.
재판에선 A씨 측이 상법 652조상 통지의무를 어겼는지가 쟁점이 됐다. 해당 조항은 '계약 기간 중' 사고 발생 위험이 현저하게 변경 또는 증가된 사실을 지체없이 통보하지 않은 계약자에 대해, 보험사가 그 사실을 안 날로부터 한 달 내에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1심은 A씨가 '계약 당시'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중요사항을 고지하지 않거나 부실하게 고지해 상법 651조의 고지의무(계약 전 알릴 의무)를 어긴 사실은 인정했다. 다만 해당 사항에 대한 제척기간은 '계약 체결일로부터 3년'으로 제한되기 때문에, 보험사가 이를 이유로 계약을 해지할 수 없다고 봤다.
나아가 A씨의 직업이 '보험 기간 중'에 바뀐 것은 아니므로 그가 통지의무를 깬 것으로 볼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통지의무의 대상이 되는 '위험의 변경 또는 증가'는 상법이 정하는 문언적 규정에 따라 계약 체결 후 발생한 것으로 해석하는 게 맞다는 취지다. 항소심 재판부와 대법원도 1심의 결론을 수긍해 보험사 측의 항소와 상고를 각각 기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