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만에 금빛 총성...한국 사격 '포스트 진종오 시대' 활짝

입력
2024.07.28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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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리우 대회 이후 첫 금메달 명중
오예진, 예상 깨고 깜짝 금메달
특정 선수에 의존하지 않고 곳곳이 메달밭

2024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다크호스로 꼽혔던 한국 사격이 제대로 일을 냈다. 금메달 5개 이상 종합 15위 이내 목표를 내걸었던 한국 선수단의 계획에는 사격에서 잘해야 금메달 1개 정도를 예상했지만 대회 초반부터 금빛 총성을 울리며 ‘포스트 진종오 시대’를 활짝 열었다.

오예진(IBK기업은행)은 28일(현지시간) 프랑스 샤토루 슈팅센터에서 열린 파리 올림픽 공기권총 10m 여자 결선에서 아무도 예상 못 한 깜짝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 종목에서 유력 메달 후보로 꼽혔던 대표팀 선배 김예지(임실군청)와 금메달 경쟁을 벌인 끝에 한국 사격의 첫 금메달을 명중시켰고, 김예지는 은메달을 따냈다. 전날 공기소총 10m 혼성 경기에서 박하준(KT)-금지현(경기도청)이 은메달을 획득한 데 이어 이틀 연속 쾌거다.

올림픽 무대에서 한국 사격이 애국가를 울려 퍼지게 한 건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이후 8년 만이다. 한국 사격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여갑순이 최초의 금메달을 수확했고, 같은 대회에서 이은철이 금메달을 추가했다. 하지만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부터 2000년 시드니 올림픽, 2004년 아테네 올림픽까지 3회 연속 ‘노골드’에 그쳤다.

긴 침체기는 ‘사격 황제’ 진종오가 깼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첫 금메달을 명중시킨 진종오는 2012년 런던 올림픽 2관왕을 차지했다. 런던 대회 때 김장미까지 금메달을 쏘아 올려 한국 사격은 금메달 3개 은메달 2개로 역대 최고 성적을 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에서도 진종오가 금맥을 이어갔으나 2021년 도쿄 올림픽에서 은메달 1개밖에 수확하지 못했다. 진종오는 도쿄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사대를 떠났다.

간판이 사라진 한국 사격은 회장사를 맡았던 든든한 파트너 한화까지 떠나면서 위기감이 감돌았지만 선수들은 묵묵히 실력을 갈고닦았다. 그리고 소리 없이 강했다. 그 결과, 과거 진종오 한 명에게 의존했던 것과 달리 곳곳에서 메달을 기대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금메달을 따낸 오예진은 당초 메달 후보가 아니었지만 이번에 ‘대형 사고’를 쳤고, 혼성전 은메달을 딴 박하준-금지현도 애초에 3, 4위 전력으로 평가받았다. 선수들이 잇달아 선전하는 모습에 평소 호랑이 같던 장갑석 총감독은 선수들을 껴안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한국 사격의 반란은 여기서 끝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대표팀 막내인 여고생 사수 반효진(대구체고)이 28일 여자 공기소총 10m 예선에서 634.5점으로 올림픽 신기록을 작성하며 전체 1위로 결선에 진출했다. 반효진이 메달을 따내면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 여갑순(금메달), 2000년 시드니 대회 강초현(은메달)에 이어 24년 만에 여고생 사수 메달리스트가 탄생한다. 남자 공기소총 10m 예선에서는 최대한(경남대)이 630.8점을 쏴 5위로 상위 8위까지 주어지는 결선 진출권을 얻었다.

파리 = 김지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