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지구상의 가상화폐 수도로 만들겠다."
미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연일 '친(親)가상화폐'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과거 비트코인을 "사기"라며 깎아내렸던 것과는 180도 달라진 태도다. 올 들어 가격이 뛰며 유동성이 풍부해진 가상화폐 업계로부터 선거 자금을 지원받으려는 속셈이 깔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러한 정치권 분위기를 반영하듯, 민주당의 새 대선 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도 업계와의 관계 개선에 나서려는 모습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7일(현지시간) 테네시주(州) 내슈빌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상화폐 연례 행사 '비트코인 2024 콘퍼런스'에 참석해 "친비트코인 대통령이 되겠다"고 밝혔다. 그는 "정부가 현재 보유하거나 미래에 획득하게 될 비트코인을 100% 전량 보유하겠다"며 "미국의 전략적 비트코인 비축량 핵심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상화폐를 100여 년 전 미국 부흥의 토대가 된 '철강 산업'에 빗대며 "가상화폐를 다른 나라가 아닌 미국에서 채굴하도록 하겠다"고도 말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의 가상화폐 규제를 철폐하겠다는 약속마저 내놨다. 특히 가상화폐 업계에 칼을 들이대 온 게리 겐슬러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을 자신의 대통령 취임 첫날 해고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대통령이 SEC 위원장을 해임시킬 직접적 권한은 없지만, 해당 언급 때 행사장에선 가장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했다. 이날 현장에 모인 가상화폐 지지자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 선거 구호인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패러디한 'MBGA(비트코인을 다시 위대하게)'란 구호를 외쳤다.
가상화폐를 향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구애'는 1기 집권 때와는 영 딴판이다. 당시 그는 가상화폐를 "가치가 없는 허상" "곧 일어날 사기" 등으로 깎아내렸다. 2019년 자신의 엑스(X·당시 트위터) 계정에 "규제되지 않은 가상화폐 자산은 마약 거래 등 불법 행위를 용이하게 할 수 있다"고 적었을 정도다.
현지에선 트럼프 전 대통령의 '변심'을 '돈줄'과 연결 짓고 있다. '쩐의 전쟁'으로 불리는 미국 대선에서 후보들은 정치 기부금 모금에 사활을 건다. 올 들어 비트코인 가격이 70% 가까이 급등하면서 유동성이 풍부해진 가상화폐 업계는 트럼프 전 대통령 입장에선 '노다지'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실제 가상화폐에 친화적인 후보들을 후원하는 관련 슈퍼팩(정치자금 모금단체)은 이미 막대한 자금력을 내세워 입김을 행사하려 하고 있다. 최근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와 가상화폐 결제 기업 리플, 벤처캐피털 안데르센 호로위츠가 관련 슈퍼팩에 쏟아부은 돈만 1억7,000만 달러(약 2,350억 원)에 달한다. WSJ는 "트럼프는 가상화폐 업계의 방대한 자금을 노리고, (바이든 행정부의) 규제에 지친 업계는 트럼프를 응원하고 있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에 질세라 해리스 부통령도 가상화폐 업계와의 관계 개선에 힘쓰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해리스 캠프는 가상화폐 업체들과의 만남을 추진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고강도 규제 탓에 등을 돌린 업체들과의 관계를 재설정하려는 의도라고 FT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