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만찬' 동성애 코드로 패러디···파격과 논란의 파리 올림픽 개막식

입력
2024.07.2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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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롱, 충격 주려는 의도 없었다" 해명에도
종교 단체들 잇따라 성명 내며 반발
목 잘린 앙투아네트, 핏빛 종이 분출... 기괴 평가
여성 위인 기리며 '성평등 올림픽' 상징성 드높이기도

27일(한국시간) 베일을 벗은 2024 파리 올림픽 개막식이 도마에 올랐다. 역사, 문화, 종교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풍자와 조롱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간 탓인데, "체제 전복적이거나 조롱 혹은 충격을 주려는 의도가 없었다"는 토마스 졸리 개막식 총괄 연출자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논란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신성 모독? 풍자?... 기괴함 넘나든 공연들

가장 비난이 집중되는 장면은 개막식 중반부에 등장한 '최후의 만찬' 패러디다. 최후의 만찬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천재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으로, 예수가 수난을 당하기 전날 밤에 자신의 12제자와 함께 한 저녁 식사 자리를 담고 있다. 졸리는 그림 속 예수의 자리에 자국 인기 DJ를 앉히고, 제자들 자리에는 여장 남자(드래그퀸)들을 줄지어 배치했다.

뒤이어 등장한 프랑스 가수 필리프 카트린느의 퍼포먼스도 충격을 안겼다. 카트린느는 파란 보디페인팅에 망사 옷을 걸치고 등장해 자신의 신곡 '벌거벗은(Nu)'을 불렀는데, 마치 술에 취한 듯한 표정과 자세로 술과 욕망의 신 디오니소스를 패러디했다.

파리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이 공연이 "인간 사이 폭력의 부조리함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한 것"이라 설명했지만 종교계는 즉각 반발했다. 프랑스 특유의 풍자와 해학을 감안하더라도 종교적 감수성을 지나치게 무시했다는 것이다. 프랑스 주교회는 개막식 당일 낸 성명에서 "기독교를 조롱하는 장면이 담긴 개막식에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며 날을 세웠고, 독일 주교회도 "'퀴어(성소수자) 성찬식'은 최악의 장면이고, 완전히 불필요했다"고 비판했다.


프랑스 혁명 당시 마리 앙투아네트가 투옥됐던 콩시에르주리 건물에서 진행된 공연도 '지나치다'는 평가가 나온다. 앙투아네트는 혁명 이후 단두대에서 처형됐는데, 앙투아네트로 분장한 합창단이 이 같은 역사를 토대로 참수된 그의 머리를 들고 노래를 부른 것. 공연 말미엔 길게 자른 빨간 종이가 창문을 통해 뿜어져 나오면서 피가 분출되는 듯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올림픽이 전 세계 남녀노소 모두가 참여하는 세계인의 무대라는 점을 감안할 때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기괴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성평등 올림픽' 상징성 드높인 여성 조각상

다만 이번 개막식은 전반적으로 정해진 관습과 규칙을 깼다는 점에서 찬사를 받기도 한다.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열린 야외 개막식인 데다 4시간여의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할 틈 없이 진행됐다는 점이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프랑스 역사 속 여성의 권리를 위해 투쟁한 여성 10명의 동상을 센강을 따라 세우는 장면은 성평등 올림픽을 표방한 파리 올림픽의 상징성을 드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1971년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문 초안을 작성한 올랭프 드 구주를 시작으로, 1922년 최초의 세계 여자 대회를 조직한 앨리스 밀리아, 사회운동가이자 정치인인 지젤 알리미 등이 동상으로 제작됐다. 기존에는 남성 혁명가들의 동상이 주를 이뤘던 만큼 여성 위인 동상의 도열은 적잖은 의미를 지닌다. 이 동상들은 올림픽이 끝난 이후에도 파기하지 않고 파리 시내 곳곳에 배치될 예정이다.

개막식 하이라이트 중 하나로 꼽히는 이 장면에 대해 목수정 작가는 자신의 SNS에서 "단순히 기계적인 남녀 동수 올림픽을 실현해 내는 데 그치지 않고, 역사의 지렛대를 함께 옮긴 여성들을 오마주하며 그들의 동상을 제작해 등장시켰다는 점이 인상적"이라고 봤다. 그는 개막식 전반에 대해서도 "스포츠 축제를 축하한다기보다 프랑스 역사를 수놓은 빛과 그림자들을 엮어 대서사로 표현한 기상천외한 서커스"라 평가했다.

김진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