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직구 날린 韓, 무시한 북러'...팽팽한 신경전 속 ARF 당일 성명 채택도 불발

입력
2024.07.28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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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F 당일 의장성명 채택 안돼
회의 후 일주일 넘게 협상 가능성도
한국, 북러 군사협력 비판에 초점
북러, 강하게 반발…中은 관망적 태도
北 무시당한 조태열 장관 "대화 위해 인사"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 회의가 27일 막을 내렸다. 한미일과 북중러가 한자리에 모이는 유일한 역내 다자안보포럼인 만큼, 북러 안보협력 등 최근 이슈를 어떤 입장으로 정리할지 이목이 집중됐다. 하지만 ARF는 회의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의장성명조차 당일 채택하지 못했다. 회의 참가국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고, 그에 따른 물밑 외교전이 치열했다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한미 vs. 북러 충돌…조태열 "북한, 전 세계 평화 안정 위협"

우리 정부를 대표한 조태열 외교장관은 회의 내내 북러 군사협력을 규탄하고 국제사회의 단합된 대응을 촉구하는 데 집중했다. 특히 북한을 겨냥해서는 각종 미사일 시험과 오물 풍선 등으로 "동북아, 전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진행한 약식 회동에서도 북러 군사협력 강화에 대한 우리 정부의 우려와 입장을 가감 없이 전달했다. 북러 면전에 돌직구를 날린 셈이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역시 북러 문제 등 지역 현안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피력하며 조 장관에 힘을 보탰다.

러시아는 강하게 반발했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생각했던 것보다 러시아와 북한의 더 강한 발언이 있었다"고 전했다.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최근 합의된 핵억제·핵작전 지침에 우려를 표명하며 "미국이 일본까지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선희 불참…대리 참석 대사, 韓 인사에 '무시'

최선희 외무상 대신 수석대표로 참석한 리영철 주라오스 북한대사는 한국 취재진의 질문 공세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ARF는 북한이 참여하는 유일한 다자안보 협의체다. 리 대사는 갈라 만찬에서 인사를 하기 위해 다가간 조 장관에게도 반응하지 않았다. 조 장관은 "도발을 중단하고 대화에 복귀하라는 걸 말하기 전 인사를 하기 위해 다가갔다"며 "(리 대사가) 돌아보지도 않아 민망했다"고 말했다.

눈에 띄는 건 중국이었다. 중국은 한국과 북러 중 어느 쪽 입장도 두둔하지 않았다. '거리두기'에 충실한 모습이었다. 갈등 중인 미국을 비판하는 것도 자제했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중국은 평화·안정을 위해서 건설적인 역할을 한다는 이미지로 비치도록 노력하는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중국은 이번 회의에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겪는 국가들과도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ARF 의장성명에 북러 군사협력 규탄 빠질 듯

이 같은 신경전은 27일 폐막 후까지 이어졌다. ARF 의장성명에 담길 문구조차 정리가 안 된 채 막판 외교전이 펼쳐지고 있다는 게 현장 관계자들 전언이다.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특히 "북러 군사협력에 대한 우려가 반영될 가능성은 매우 적다"고 내다봤다. 당사국인 북한과 러시아의 반발을 무시한 채 북러 군사협력 문제를 성명 문구에 반영할 가능성은 낮다는 예측이다. 대신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는 비핵확산체제(NPT) 주도국인 러시아와 중국 또한 명시적으로 두둔할 수 없어, 문구에 반영될 것으로 보고 있다.

비엔티안(라오스)=문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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