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아내와 남편의 내조

입력
2024.07.28 16:1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미국에서는 대통령 부인을 ‘퍼스트 레이디’(First Lady)라고 부른다. 이 단어를 처음 사용한 인물은 재커리 테일러(12대) 대통령이다. 제임스 매디슨(4대ㆍ1751~1836) 대통령의 부인 돌리 매디슨(1768~1849) 장례식에서, 고인을 ‘퍼스트 레이디’로 호칭했다. 11월 대선에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승리한다면 이 호칭도 변해야 한다. 이미 사상 첫 ‘세컨드 젠틀맨’(부통령의 남편)이 된 더글러스 엠호프가 ‘퍼스트 젠틀맨’이 될 것이다.

□엠호프는 아내를 위한 헌신적 내조로 유명하다. 지식재산권 전문 변호사로 활동했지만 2014년 아내와 재혼 후 경력을 바꿨다. 아내를 따라 워싱턴으로 이사한 뒤에는 고액 연봉 로펌을 퇴사하고 조지타운대 교수가 됐다. 2022년 5월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을 위해 방한했을 때 한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부인이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남자다운 일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본보 ‘아침을 열며’ 칼럼을 집필하다가 대통령실 저출생수석으로 영입된 유혜미 한양대 교수도 남편 내조로 유명하다. 유 수석 남편은 서울대 96학번 동기, 47세 동갑인 석병훈 이화여대 교수다. 부부는 초등생 딸, 아들 쌍둥이를 두고 있는데, 석 교수와 유 수석이 각각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뉴욕주립대(버팔로) 강단에 섰을 때 태어났다. 석 교수는 갓 태어난 두 아이를 2년간 홀로 키웠다. 유 수석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석 교수가 평생의 ‘까방권(까임 방지 권리·면죄부)’을 그때 얻었다”며 감사의 뜻을 밝혔다.

□적극적 가사 도움은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 남편에게 권고하는 덕목이기도 하다. IMF는 최근 자료에서 아내가 무급 가사·돌봄을 전담하는 한국의 실태를 개탄한 뒤, 남녀 근무시간 격차를 2035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으로 줄이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18% 늘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가사에서 남편의 도움은 아내에 대한 존중의 표현이자, 경제성장 원동력이기도 한 셈이다. 중책을 맡는 바람에 생긴 유 수석의 ‘아침을 열며’ 칼럼 빈자리를 석 교수가 흔쾌히 맡기로 한 만큼 독자들의 변함없는 성원도 부탁드린다.

조철환 오피니언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