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2시쯤 서울 강남구 신사동 티몬 본사에서 만난 박모(60)씨는 이미 땀으로 푹 젖어버린 손수건으로 연신 이마를 훔쳤다. 위메프와 달리 본사를 폐쇄했던 티몬은 성난 피해자들이 전날 밤 늦게 사무실을 점거하자 이날 새벽부터 현장 환불 접수를 받기 시작했다. 박씨도 이 소식을 듣고 경기 파주에서 첫차를 타고 왔다. 오전 8시 그가 손에 쥔 순번표는 1800번대였다. 이후부터는 환불 신청서를 접수할 차례가 돌아오기까지 '무한 대기'였다. 박씨가 입술을 깨물며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밤을 새워서라도 받아내야죠."
티몬 본사 일대는 수천 명이 한꺼번에 모여 발 디딜 틈이 없이 북적였다. 금융감독원도 이날부터 위메프·티몬 전담 창구를 마련해 피해 접수를 받고 있지만 못 미더워 이곳으로 직접 찾아온 피해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수기로 대기 번호를 작성했는데 오전 10시 이미 2,000번대를 넘어섰다.
티몬 직원은 환불 관련 종이표를 나눠줄 때만 나타났다 사라질 뿐 안내를 한다거나 대기줄을 관리하는 등의 대응이 없는 탓에 혼선도 빚어졌다. 경기 광주에서 온 주부 김모(41)씨는 "티몬에서 시키는 대로 큐알(QR) 코드로 대기를 접수했는데, 환불 접수 명단은 또 수기 번호로 불러 줄을 두 번째 선다"며 "두 시간째 기다리는데 더위에 쓰러질 것 같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남양주 주민 양모(42)씨는 "부부가 각각 반차를 썼는데 남편이 오전에 1,700번대를 받고 돌아갔고, 이젠 내가 환불 신청을 위해 (번호가 불리길) 기다리고 있다"며 "안내라도 좀 해주면 좋겠는데 무작정 건물 앞에서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건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면서도 "본사 앞을 벗어났다간 300만 원을 못 받을 것 같아 남편과 주말 내내 기다려볼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안전사고 우려도 컸다. 본사 건물 지상주차장과 외부 계단엔 수백 명이 돗자리나 박스를 깔고 앉았다. 폭염특보가 떨어진 가운데 거센 빗발의 소나기가 갑자기 쏟아지길 반복하면서 야외 인파 속에선 비명이 터졌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구급차와 경찰차가 여러 대 대기했는데 경사진 지역에 있던 피해자 2명이 비에 미끄러져 다쳐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다.
이날 오후 3시 기준 대기 번호 600번대까지 환불 신청서를 접수한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실제 환불받은 이들은 200명대에 그친 것으로 파악됐다. 권도완 티몬 운영사업본부장이 본사 앞에서 "여행 상품부터 늦으면 모레, 빠르면 내일부터 처리가 진행될 것 같다"고 말할 뿐 티몬 쪽은 환불 규모를 정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이에 피해자들 사이에선 돈을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퍼지고 있다.
위메프와 티몬을 상대로 한 집단소송도 논의되고 있다. 심준섭 변호사는 "개인 소비자와 셀러를 나눠 피해자 명단을 받고 있다"며 "가압류와 같은 보존 처분과 형사고발을 함께 진행하려고 한다. 총책임자인 구영배 큐텐 대표 등에 대해 사기 혐의 고소고발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법무법인 대륜 역시 "피해액이 수억 원에 이르는 피해자들의 문의가 잇따라 집단소송 TF를 구성했다"며 "채무불이행 손해배상청구, 부당이득 반환 소송 등을 제기할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