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 없는 의정갈등에 병원노동자 폭발…"공공의대, 지역의사제 도입하라"

입력
2024.07.26 16:00
"의사 공백 길어져 간호사가 의사 업무"
공공의료 중심 의료시스템 전환 요구
노조 "공공의대·지역의사제 도입하라"
전공의 빈자리를 간호사들이 힘겹게 메우고 있다. 희생을 강요당하는 것은 결국 병원 직원들이다.
대구가톨릭대학교 의료기사 배호경씨

6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정부와 의사계의 갈등에 병원 노동자들이 폭발했다. 이들은 간호사, 의료기사(의료기기 운영 담당) 등 병원에서 의사들과 함께 호흡하는 의료진이다. 병원 노동자들은 "의사 공백으로 인한 병원 수익성 악화와 의료 업무 부담이 직원들에게 쏟아지고 있다"며 공공병원 확대, 공공의대 도입 등 근본적 해결책을 요구했다.

"간호사가 의사 업무 본다… 환자 안전 팽개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는 26일 오전 서울 광화문역 일대에서 '의료 위기 해결, 국민건강권 회복을 위한 투쟁선포 선전전'을 열었다. 이 자리에선 의정갈등 이후 환자를 떠난 의사들로 인해 의료 현장이 무너지고 있다는 증언이 잇따랐다.

서울대병원 의료기사 윤태석씨는 "서울대병원은 의사들의 업무를 전가시키기 위해 PA 간호사를 대대적으로 모집했다"며 "직원뿐만 아니라 환자들의 안전에 매우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진료지원(PA) 간호사는 외래진료나 병동, 수술실 등에서 의사를 보조하며 일부 역할을 대신하는 간호사를 뜻하는데, 이들을 늘려 의사 업무 공백을 메우려 한다는 게 노조 측 주장이다. 윤씨는 "PA 간호사에게는 업무의 범위도 내용도 명확하게 규정돼 있지 않다"며 "올해 내내 이런 변화가 병원 현장에서 진행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구가톨릭대 의료기사 배호경씨는 "간호사들은 (의사들을 대신해) 늘어난 업무에 자포자기했다"며 "의사들 업무를 이렇게까지 해도 되는 건지, 이후 받게 될 불이익은 뭔지 생각할 겨를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인턴 의사들이 사직하니 인턴 업무를 전담으로 하는 간호사 팀을 따로 만들어 배치했다"며 "간호사들은 업무 배치 전환에 두려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공공의대, 지역의사제 도입하라"

병원 노동자들은 공공의료 확대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현행 민간병원 중심 의료시스템으로는 의사 집단행동을 막기 힘들고 이로 인한 국민 건강권 훼손도 심각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수익성을 중시하는 민간의료 시스템하에서는 필수의료, 지역의료 강화라는 의료개혁 목표 달성이 요원하다는 입장이다.

노조는 공공의료 확대 방안으로 △공공병원 강화 △ 공공의료인력 확충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제시했다. 박경득 의료연대본부장은 "과잉진료 걱정 없이 믿고 찾을 수 있는 지역 공공병원이 더 많아져야 한다"며 "공공의대와 지역의사제를 도입해 필수과목과 지역에 의사를 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공의대는 의대생이 국가에서 학비를 지원받는 대신 의사가 된 후 외과, 산과, 소아과 등 필수과목에서 10년 동안 의무적으로 진료하는 제도다. 지역의사제는 지역별로 의대생 정원을 할당해 모집한 뒤 의사 자격증 취득 후 일정 기간 해당 지역으로 돌아가 근무하는 시스템이다. 공공의대에 지역의사제를 결합하면 소멸 상태에 놓인 지역 필수과목 의사를 일정 부분 보강할 수 있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조합원 1만7,000명을 보유한 의료연대는 공공의료 확보를 위한 하반기 투쟁에 돌입할 계획이다. 의료진 공백으로 공공의료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만큼, 의정갈등 사태가 공공의료 강화의 지렛대 역할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의정 갈등이 출구 없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병원 노동자까지 투쟁에 돌입할 경우 의료현장 혼란은 걷잡을 수 없을 거란 우려도 있다.

송주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