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의 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입력
2024.07.2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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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대표 체제 정치구도 크게 바꿀 계기
당정관계 쇄신 성패에 정권 명운 달려
尹, 김·채 족쇄 풀고 韓 체제 지켜줘야

국민의힘 전당대회 결과는 해석할 것도 없다. 다만 ‘한동훈의 압승’ 표현은 잘못됐다. 친윤, 정확히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반대 내지 심판이다. 총선의 판박이 재현이다. 그때와 달라진 게 없으니 같은 결과가 나온 것뿐이다. 아니, 달라진 건 있다. 당심과 민심의 동조화 현상이다. 충성 지지자들도 돌아앉았다는 뜻이다. 윤심은 용도 폐기됐다.

한동훈 신임 당대표에게 당정관계 복원, 여당 쇄신 등의 주문들이 쏟아진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깔끔한 수재 정도의 이미지다. 빠른 두뇌회전과 감각적 언변도 시간이 지나 가벼운 순발력쯤으로 퇴색했다. 주문들을 감당할 역량은 미지(未知)다. 검증시간이 짧아 부풀려진 허상을 실력으로 볼 건 아니다. 실상은 곧 드러날 것이다.

어떻든 한 체제 출범의 의미는 크다. 여야 두 강성 지도자에 갇힌 정치판에 큰 변화의 동인이 생겼다는 점에서다. 3자 구도가 되면서 완강한 정치구도에 균열이 불가피해졌다. 한 대표는 이재명 전 민주당 대표가 대통령의 하수인으로 여겨 상대도 하지 않던 김기현 전 대표와는 위상이 다르다. 잠재적 대선 경쟁자로 승부해야 하는 인물이다. 이 전 대표가 윤 대통령의 잘못에 기대 그럭저럭 갈 수 있던 호시절도 끝났다.

한 대표의 앞날을 예측하긴 이르다. 관건은 온전히 윤 대통령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운신의 공간을 만들어주지 않으면 그는 촌보도 나아갈 수 없다. 한 대표의 혁신방안 중에 그 혼자 해결할 수 있는 건 단 한 가지도 없다. 윤 대통령의 지원이나 협조 없이 어떻게 당정관계를 복원하며 당을 쇄신할 수 있나.

주문은 그래서 한 대표가 아니라 먼저 윤 대통령에게 하는 게 맞다. 핵심은 같다. 걱정하는 이들이 입 닳도록 얘기하는 김건희 여사와 채 상병 문제의 정리다. 우회로를 궁리할수록 상황은 악화일로다. 이번에 김 여사 조사도 뒷말 없게 했으면 작은 진전이 될 수 있었다. 뻔한 무혐의 결론이어도 특혜조사는 일말의 설득 여지마저 자르고 마지막 출구를 스스로 닫았다. 사안의 경중 판단을 어떻게 매번 이토록 그르칠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윤 대통령이 명심해야 할 게 있다. 새 당대표와의 관계를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의 관계로 봐선 안 된다. 윤 대통령 입장에서 한동훈 당 체제는 본인과 정권의 안위를 위한 가장 확실한 도구이자 실정을 완충시킬 수 있는 보완재다. 당의 미래자산인 한 대표를 또 내쳐 야당의 먹잇감으로나 만들면 정권의 앞날은 물론이거니와 차기 정권도 도모할 수 없게 된다.

잠깐 곁으로 돌자면 윤 대통령 탄핵론은 다분히 감정적이다. 국민청원사이트에 올라 있는 5가지 탄핵사유 중 국정방향과 정책행위에 관한 건은 논할 가치도 없다. 채 상병 외압과 김 여사 비리는 위법일 수 있으나 현직 대통령 직위를 박탈할 정도의 중한 사안으로 보긴 어렵다. 문제는 불소추특권이 사라진 임기 후다. 차기 정권의 정치적 효용에 따라 혹독한 시간이 올 수도 있다는 얘기다.

결론은 자명하다. 윤 대통령이 한 대표를 지키지 않으면 정권도, 본인도 지킬 수 없다. 앞서 말했듯 그의 실제 역량과 자질은 두고 볼 일이지만 지금 당장은 그를 족쇄에서 풀어주고 국정의 동반자로 인정하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 정치는 당대표에게 맡기고 대통령은 체코원전 수주와 같은 큰 국가적 업적관리에 집중하면 된다.

늘 그렇듯 윤 대통령의 변화 조짐은 아직 없다. “한 대표 외롭지 않게 주변에서 잘 도와줘라”는 엊그제 덕담은 본인 역할을 남에게 돌리는 진정성 제로의 유체이탈 화법이다. 그래서 불안하다.


이준희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