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0 탈환을 꿈꾸던 코스피가 2,710선까지 밀렸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 증시를 떠받치는 양대 반도체 종목이 속절없이 무너지면서다. 25일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1.7% 내린 2,710.65로 장을 마쳤다. 외국인 투자자가 6,767억 원, 기관이 1,571억 원어치 매물을 내던진 결과다.
이날 증시 비운의 주인공은 SK하이닉스였다. 분기 기준 역대 최대 실적에도 외국인 투자자로부터 집중 매도 포화를 맞았다. 종가는 전날보다 8.9% 급락한 19만 원으로, 지난달 5일 이후 약 두 달 만에 '20만 닉스'가 무너졌다. 또 다른 반도체 대형주 삼성전자는 2.0% 하락한 8만400원에 장을 마치며 '8만 전자'를 가까스로 사수했다.
미국 빅테크주 실적 발표가 화근이 됐다. 미국 증시 상승세를 이끌던 '매그니피센트(위대한·M)7' 종목 중 테슬라(-12.3%)와 알파벳(-5.0%)이 2분기 실적을 발표했는데 투자자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다. 특히 알파벳이 인공지능(AI) 설비투자가 언제 수익으로 전환될지 불확실하다고 밝히면서, 시장엔 AI 산업 전반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됐다. AI 대장주 엔비디아가 6.8% 급락한 것은 물론, 나스닥지수(-3.6%)가 2년 만에 최대폭의 약세를 기록했다.
이날 한국 증시에 대해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 코스피는 AI 반도체, 전기차, 2차전지의 시가총액 비중이 높은 탓에 변동성 확대에 직면했다"며 "장 시작 전 SK하이닉스가 2분기 호실적을 발표했음에도 피크아웃(정점을 찍고 하락) 우려가 불거지며 반도체 종목 전반이 부진했다"고 평가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 실적을 통해 전방산업의 반도체 수요와 업황 가이던스(전망)가 견조함을 확인했다. AI 모멘텀(상승세)에 대한 펀더멘털(기초체력) 훼손보다는 앞서간 시장의 기대심리 되돌림으로 판단한다"며 과열 해소의 일환으로 봤다.
미국 빅테크 폭락은 아시아 증시 전반의 약세로 이어졌다. 일본 닛케이지수가 마이너스(-)3.1%로 낙폭이 가장 컸고, 한때 2% 이상 하락했던 홍콩 항셍지수는 1.7%로 낙폭을 줄였다. 대만 가권지수는 태풍 '개미' 상륙에 휴장하며 증시 폭풍을 피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1,388원까지 고점을 높였다. 일본중앙은행(BOJ)이 금리인상 내지 인상 신호를 보낼 것이라는 시장 예상에 엔화가 몸값을 올렸지만, 원화는 반대로 하락한 것이다. 원화는 통상 엔화 가치를 좇는(동조화하는) 경향이 있다. 김석환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증시에서) 외국인이 전방위적인 매도 압력을 키운 데다,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시장 예상(0.1% 증가)을 밑돌았다"며 "내부 요인으로 원화가 엔화 강세에 동조하지 못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