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티 커피와 '커퍼'

입력
2024.07.27 04:30
19면
커피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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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서 카톡이 왔다. '이 콩 상태 어때 보여? 지인에게 선물받은 건데…' 커피를 정말 좋아하는 친구의 눈에도 못내 미심쩍었던 모양이었다. 연갈색 콩은 약배전이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말라 보였다. 다만 커피는 마셔 보기 전에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된다. 잠시 후 다시 카톡이 왔다. '한 모금도 못 마시고 버렸어. 인공 향까지 가미돼서 머리가 다 아파.' 커피를 선물한 사람은 독특한 향이 '스페셜'하다고 느껴서, 좋은 사람과 나누고 싶었으리라.

커피를 즐긴다고 자부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듣거나 마셔 보았을 스페셜티 커피. 그저 스페셜한 커피가 아니라 국제 기준의 심사평가에서 80점 이상(100점 만점)을 받은 고품질 커피에만 붙일 수 있는 이름이다. 평가 방식도 매우 깐깐해서, 경험 많은 심사위원들이 향, 산미, 단맛, 보디, 클린함 등 좋은 커피에 요구되는 10개 항목을 엄격하게 판별해 점수를 매긴다. 이때 커피를 평가하기 위한 방법을 '커핑(cupping)', 평가하는 사람을 '커퍼(cupper)'라고 부른다. 와인에서 말하는 '테이스팅'과 '소믈리에'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커피를 좋아한다고 해서 아무나 평가를 하고, 점수를 매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정해진 기준에 따라 커피 품질을 평가하는 '커핑'을 자동차 운전이라고 비유하면, 운전면허증에 해당하는 '커퍼'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큐그레이더(Q-Grader)'라는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자격증을 얻기까지 적지 않은 비용이 들지만, 평생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꾸준히 훈련하지 않으면 능력은 퇴보하기 때문에, 3년마다 한 번씩 갱신 시험을 치르도록 권장하고 있다.

커피 생산지별로 매해 실시하는 COE(Cup Of Excellence; 커피품평회)에서 최고 득점을 받은 커피에 엄청난 가격이 붙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경험 많고 뛰어난 감각을 지닌 커퍼들이 보증하는 최상의 품질이니까.

하지만 언젠가부터 카페 홍보용으로 전락한 큐그레이더 자격증이 늘고 있는 듯해서 걱정이다. 한 번 딴 뒤 벽에 걸어두고 훈장처럼 자랑하는 인테리어 소품 같은 것. 깐깐한 커피 감별 대신, 약배전 콩에 인공 향을 넣어 소비자를 속이고 시장을 교란하는 것. 내 친구가 받은 원두는 아마도 그 과정을 거친 '스페셜'한 커피가 아니었을까.

참고로 매년 큐그레이더 자격증을 가장 많이 따는 나라는 다름 아닌 대한민국이다.




윤선해 ㈜후지로얄코리아·와이로커피 대표